800만명이 봤다면 엄청나다. 18세 이상 국민의 거의 절반이 ‘친구’(감독 곽경택)를 봤다는 이야기다.산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친구’ 는 우리사회의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TV 코미디와 광고가 ‘친구’ 를 따라하고, 정치인이 영화속 대사를 흉내내며 우정과 의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화계는 ‘친구’ 의 상업적 성공만을 이야기한다. 얼마를 벌었고, 얼마에 수출했고, 앞으로 또 얼마를 더 벌 것인지.
그 속에 담긴 이 시대가공감하는 정서와 사회적 의미, 미학적인 진지한 논의나 자리매김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강신성일 의원이 “차마부끄러울 정도의 욕설과 잔인한 폭력장면으로 얼룩져 있다” 고 말하자 뒤늦게 그것에 대한 찬반논쟁이 나왔다.
그러나 그 논쟁에서도, 22일 SBS가 마련한 ‘토론 공방’ 에서도 ‘친구’ 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평가는 없었다. ‘칼로배를 찌르는 장면이 여과 없이 재연돼 폭력적이다.’
‘그 폭력이 위험한 것은 판타지가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라는 식이었다. ‘흥행에 성공하면 좋은 영화’ 라는 듯 침묵하다 갑자기 ‘폭력’ 이란 단어를 들고 800만명이 들어서는 안될 나쁜영화라고 말하는 것도 한심하다.
지금 한국영화계는 오직 ‘돈’ 에 중독돼 있다. 투기자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상업적 성공으로 시장을 넓히면 그것이 한국영화의 발전이라는 논리를강요한다.
모두 거기에 모두 휩쓸려가고 있다. 오죽하면 배우 최민식이 ‘파이란’을찍고 나서 “제발 사람 머리수만 이야기하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풍토를 바꾸자”고했을까.
제작자나 투자자야 그렇다 하더라도 매체와 평론가들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서글프다. 어느 평론가는처음 ‘친구’ 를 인색하게 평가했다가, 폭발적으로 흥행이 되자 좋은 영화라며 평점(별)을 높였다.
한 영화인은 각자의 영역 구분이 없어진 우리 영화계를 한탄했다. 모두가 현장의영화인이 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냉철한 담론이나 분석, 평가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내남없이 영화 개봉이 끝나는 동시에 그 영화도 잊어버린다. ‘친구’ 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친구’ 는 흥행기록을 비교하는 자료로만 남을 것이다.
평론가들이여,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친구’ 가 가진 한국영화의 문제점과 의미, 방향을 대해 이야기하자.어쩌면 ‘친구’ 역시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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