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주(逃走)이다. 세 명의 여고생과 수학선생이 함께 학교를 뛰쳐나간다. 학생들 중에는 전교 1등의모범생도 있고, 영화감독이 꿈인 엉뚱한 ‘범생(凡生)이’도있다.하성란(34)씨가 새로 발표한 짤막한 장편소설 ‘내영화의 주인공’(작가정신 발행)은 탈주의 소설이다.
햇살 해맑기만 한 5월의 어느 아침, 조회시간 ‘배움에의열망’을 강조하는 교장선생의 훈시가 따분해진 세 명의 여고생은 전교생의 환호를 받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담을 뛰어넘는다.
셋의 탈주는 전혀 무계획적이다. 전교 1등의 모범생 상숙은 “부모님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언젠가 내 맘대로 살 날이 올 거라” 믿었지만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
상숙에게 이번 탈주는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탈이다.영화감독이 꿈인 재희, 그와 단짝인 학교 오락부장 송미는 상숙과 “왜, 참아야 하지?” 라는 물음 하나로 일체가 된다.
재단 이사장의 고급차에 흠집을 내며 학교생활에서 느끼던 염증을 표출하던 젊은 수학선생 수혁은‘교정을 뒤덮은 5월의 아카시아 향’에 충동적으로 사표를낸 뒤, 길거리에서 우연히 이들 세 학생을 만나 합류한다.
넷은 단지 바다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몰운대로 향한다. 소설은 이들의 탈주를한편의 로드무비처럼 그려낸다.
작가 하씨는 ‘젊음의 자유’나 ‘교육 구조’ 등에 대한 설명을 하려 하거나 토를 달지 않고, 여느 그의 소설처럼 대화와 묘사만의 분명한 문체로 이들의 일탈을 경쾌한 필치로그려낸다.
“교복 자율화 1세대여서 사복을 입었지만, 교복을 입었을 때보다 더한 복장 검사에 시달렸고,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이 주일에 한 번 꼴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작가 하씨는 “그때 내게로 흐르는시간은 느려 터지기만 했다.
열 아홉이었을 때 나는 하루빨리 그 시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며창작의도를 말했다. 하씨의 고교시절이나 지금이나, 젊음의 그 나이는 언제나 ‘자신이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꿈꾸는 탈주의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젊음도 아닐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