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의 빌딩가에서 근무하는 K(36ㆍ회사원ㆍ성동구 옥수동)씨는 여름철이면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다.주변 건물 1~2층 외벽에 부착된 에어컨 송풍기가 대부분 인도쪽으로 향해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무더운 바람을 정면으로 쐬면서 지나다녀야 하기 때문. K씨는 25일에도 이런 짜증나는 퇴근길을 거쳐 귀가했다가 집으로 우송된 경고장을 보고 황당해했다.
경고장은 “15층인 당신의 아파트 외벽에 부착된 에어컨 송풍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구청으로부터 벌금이 부과된다”는 내용이었다.
K씨는 즉시 “정작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도심 건물 1~2층의 송풍기는 규제하지않고 고층 아파트만 단속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의 답변은 “도심 건물의 송풍기는 법적으로 규제할 수없어 아파트만 단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사무용 빌딩은 OK, 아파트는 NO
사무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송풍기로 인해 서울시는 그간 숱한 민원에 시달렸다. 여름철이면 ‘송풍기를 건물 내부에 설치하던지 외벽에 있을 경우 바람 방향을 하늘로 향하도록 해달라’는 민원이 줄을 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5월 건교부에 ▲신축 건물은 송풍기 내부설치 ▲기존 송풍기는 풍향을 상향조정 ▲에어컨 제조업체는 풍향을 상향 조정하도록 제조 유도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건축법 시행령 조정건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건교부 측은 최근 “송풍기로 인한 시민불편은 건축법적인 문제가 아닌 환경적인 문제이므로 법령을 고칠 이유가 없다”며 개정 불가(不可)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시는 정작 시민에게 심각한 불편을 끼치는 도심 건물의 송풍기 단속은 포기한 채 주택법에 의거, 그다지 문제가 없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대해서만 규제에 나서고 있다.
■ 각 구청에서 개별적인 단속 실시
주택건설 촉진법에 따르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입주자 의무사항으로 건물 외벽에는 돌출물을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여기에는 에어컨 송풍기나 화분대 등이 적용되는데, 화분대는 대부분 베란다 안쪽에 설치하고 있어 사실상 에어컨송풍기만 이 조항에 해당된다. 그래서 시 산하 25개 구청은 신규 입주 아파트 위주로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송풍기에 대한 단속을 펴고 있다.
K씨를 비롯한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바로 옆의 상가건물은 송풍기가 인도를향해 있어도 단속하지 않으면서 공중에 떠 있는 아파트 외벽의 송풍기만 규제하다니, 말이나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관리사무소측의 동의를 얻어 송풍기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형평성의문제 때문에 강력히 단속할 수도 그저 방관할 수도 없어 고민중이다”라고 털어 놓았다.
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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