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이미지로 먹고 사는 이들이다. 하지만 늘 같은 이미지로는 안 된다. 작품에따라, 나이나 분위기에 따라 혹은 단지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극과 극을 오갈 수 있어야 한다.금방이라도 물방울이 똑 떨어질 것같은 청순한 느낌의 소녀가 보는 이들을 한 순간에 빨아들이는 요부나 장난기가 얼굴 가득 묻어나는 톰 보이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
사진작가 조세현과 메이크 업 아티스트 이경민은 바로 그런 스타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스타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권력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그들역시 대중문화의 주연이다.
■국내 메이크업 아티스트 1세대 연예계 왕언니 이경민
연예인들은 방송이나 영화는 물론 음반 재킷, CF, 각종 쇼와 화보 촬영에 앞서반드시 메이크 업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화장은 연예인이 직접 하거나 이른바 분장사들의 몫이었지만 이제는그렇지 않다.
화장이 메이크 업이라는 말로 바뀌고 메이크 업 아티스트라는 말이 새로 생겨났듯이, 메이크 업이 이미지 연출에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차지하는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민(38)은 우리나라 메이크 업 아티스트 1세대다. 80년대 중반 CF로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경력 15년이 넘는다.
그와 비슷하게 스타들의 얼굴을 만지는 조성아, 정샘물 등은 한참 후배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최고의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혜수, 고소영, 이영애, 최지우, 오연수, 유호정, 신애라, 전인화, 김민희, 김규리, 이선진, 김현정, 이정현, 샤크라등이 그에게 정기적으로 메이크 업을 받는 이들이다. 요즘 가장 뜨고 있는 하리수도 벌써 그의 단골이 되었다.
CF나 화보 등으로 이따금 만나는이들까지 합치면 그 자신의 말대로 “맨 얼굴 안 본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그는 연예인과 각별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그의일터 ‘이경민 헤어& 메이크 업’을 찾는 연예인들은그를 원장님 대신 ‘왕언니’ 라고 부른다.
데뷔 때부터 그를 알아온 오연수, 유호정, 신애라, 최지우 등 몇몇 연예인들은아예 그와 함께 계를 만들어 각자의 집에 돌아가며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할 정도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너털 웃음과 재잘거림을 동시에갖춘 그는 친화력을 타고 태어난 것 같다.
그의 메이크 업은 어떤 것일까. “더 예쁘게 보이고싶은 연예인들의 마음을 충족시키되 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일하기 전에 반드시 고객의 의사를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언니가 알아서 해주세요” 지만.
한 마디로 무슨 무슨 메이크 업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의 메이크 업을 지향한다는 얘기다. ‘산소 같은 여자’의이미지였던 이영애를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하고 도도한 이미지로 변신시킨 화장품 ‘헤라’나, 대담하고 화려한 이미지의 김혜수를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바꿔놓은 소망 화장품 광고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자면 그 사람이지닌 장단점을 재빨리 잡아내야 한다. 날카로운 눈과 감도 이경민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미용실을 찾아 온, 평범하기짝이 없던 얼굴의 최진실에게서 빛나는 웃음과 입매를 발견한 것도, 잡지에서 보조 모델 이응경을 찍은 것도, 복장학원에서 옷을 만들고 있던 박영선을데뷔시킨 것도 바로 그다.
“얼굴은 두 손으로 가릴 정도로 작지만 메이크 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그의 지론은 모두 이런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라기 보다는가슴 속에 언제나 작은 떨림이 일고 있다”고 한다.
메이크 업을 처음 시작한 15년 전과 하나도달라지지 않은 그 떨림은 “내게 맨 얼굴을 맡기고 앉은 사람에 대한 책임감과 그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작업이 끝나고 났을 때 그들이 보여줄 만족스런 표정과 나의 메이크 업으로 그들이 잘 될 것이라는 데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그 맛 때문에 15년 넘게 붓을 놓지 못하고 있다.
■연예인에서 클래식 음악인까지 "촬영전 세번은 만나야" 철칙
“소주광고를 촬영할 때였다. 모델인 배우 최민수는 원래 양주만 마시고 소주는 안 마신다고 했다. 소주를 안 마시고 어떻게 ‘소주 표정’이 나오느냐,마시고 찍자고 했다.
”부드러운 소주와 터프한 최민수.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을 이미지로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사진작가 조세현(43ㆍ중앙대 사진학과교수)이다.
정윤희,오수미, 이미숙 등 1970, 80년대 스타로부터 시작해 고소영, 김혜수, 심은하, 이영애, 이미연, 송혜교, 이정재, 장동건, 유오성, 원빈등 배우, 조성모, H.O.T 같은 대중가수, 그리고 조수미, 장영주, 곽정, 강동석 등 클래식 음악인까지.
연예인들이조세현을 찾는 것은 그저 ‘예쁘고 멋지게’ 나오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은 듯 눈을 살짝 치켜 뜬 조성모의 사진 한장은 이제 조성모의 이미지 그 자체가 됐다.
천재 소녀에서 성숙한 바이얼리니스트로 장영주의 이미지 역시 바뀌었다. 아름답고 슬픈 이미연의 모습을담은 ‘연가’ 앨범으로 이미연이 새로운 스타로 태어나는 데 결정타를 날렸다.
완성된 배우만을 찍는 것은 아니다. 중앙대 후배였던 고소영, 이대앞옷가게에서 만난 김민희를 발굴했다.
“실력은팔되 웃음을 팔지 않는다.” “고객은 작가를 믿어야 한다. 일을 맡긴 후 상관하면 안 된다.
효과가 안 나오면 거래를 끊으면 되는 것 아닌가.”성격이 직설적이고 까다로운 편이다. 그런 그를 스타들이 좋아하는 것은 ‘배우 그 이상’의 이미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사진촬영의 유일한 옵션은 단 하나. 촬영 전 세 번은 만나야 한다. H.O.T의 지난 앨범 촬영 때 멤버들 모두 너무 바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멤버가 5명이니 15번은 만난 것이다.” 아무리 바쁜 스타라도 그와 3번의 만남은 필수다.
그리고 숙제를 내준다. “당신의 스타일을 찾아봐라.”가수 김현정, H.O.T의 장우혁, 문희준, S.E.S의 바다는 모두 한 시간에 읽지 못할 만큼의 많은 자료를 가져 와 사진 컨셉을 상의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선 “선생님 벌써 끝났어요? 조금 더 찍어주세요”하는 주문이 나올 만큼 작업이 빠르다. 오래 끌 이유가 없다. 자신감과 신뢰감이면충분하다.
재계,정계 인사들의 사진도 많이 찍었다. 4ㆍ13총선 때 그가 촬영한 후보는 모두 당선됐다. 검사 출신인 함승희 의원을 제외하고 한결같은 컨셉은 ‘부드럽게’.정치인들의 사진 역시 당당히 공개적으로 촬영하고, 밝히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앙대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일간신문 사진부 기자, 패션사진 전문가를 거쳐 국내 최고 중 한 명의 인물 사진작가가 됐다.
‘상업사진작가’라는 콤플렉스가있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작가’로 불리워선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사진의 역사, 이제 고작 150년이 지났을 뿐이다. 다른장르와 비교하면 아직도 젖먹는 시기다. 작가는 돌사진, 증명사진도 잘 찍어야 한다.
사진은 하나고, 문화도 하나다.”스타 사진을 찍는 것이 스타의들러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중문화 시대, “얼굴에서 히스토리를 찾는다” 는 그의 작업이 각광을 받는 것은 그가 늘 스타의 새로운‘스토리’를 사진으로 들려주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사진을 ‘종이 위의 미이라’로 부른다.
김지영 기자
koshaq@hk.co.kr
■두 사람에게 묻고 싶은 7가지
▦ 내 작업의 세 가지 비결
(조)마라톤을 좋아한다. 그 안에 숨은 피와 땀과 눈물이 나를 만든다.
(이)성실, 신뢰, 화장을 받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된 인물 하나만 꼽으라면.
(조)소녀에서 성숙한 여성으로. 바이얼리니스트 장영주의 아름다운 변신.
(이)박선영. 날카롭고 선머슴 같던 그를 패션 카탈로그 촬영 때 강렬하면서도 고혹적인느낌을 주는 성숙한 여인으로 바꿔 놓았다.
▦아, 이사람 만만찮네!
(조)카리스마가 강한 서태지. 광고 사진 촬영 때 너무 바빠 ‘3회 만남’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덧붙여 스스로의 카리스마가강하니 ‘조세현식’ 작업이 어려웠다.
(이)이영애. 본인의 얼굴을 너무 잘 알고 화장이 잘 되었을 때와 안되었을 때를집어내는 예민함이 남다르다.
▦맨 얼굴도 멋진 연예인?
(조)한고은, 황인영은 너무 멋진 배우들이라 사진으로 이미지가 더 좋아지기 힘들다.
(이)굳이 꼽자면 노 메이크 업도 잘 어울리는 고소영과 피부 탄력이 좋은 김혜수.
▦나의 직업 철학은.
(조)내가 사진을 찍지만 결국 사진에 찍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얼굴은 겨우 두 손으로 가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메이크 업은 마음까지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나는 대중문화의 주연인가, 조연인가
(조)주연도 조연도 아닌 ‘메이크’ 하는 사람이다. 무대 뒤에 숨은 사람.
(이)연예인과 메이크 업 아티스트는 주조연을 구별할 수 없는, 공생 사이다. 각자최선을 다했을 때만 최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상대에 대해
(조)이경민은 마술사다. 스카프로 비둘기를 만들 듯 그는 특별한 퀄리티를 가진마술사다.
(이)조세현은 늘 사진 찍힐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적극적으로 리드한다. 찰나의순간을 잡아내는 그 섬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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