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낫지도 금방 죽지도 않는, 가난은 어쩌면 그렇게 내 병 같을까”삭을 대로 삭은 양철 지붕 밑에 찌그러진 빗물받이 그릇이 놓인 봉천동 산89-99번지의 누옥. 무대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구차한 삶에 찌든 신경질적인 고함소리가 배어 있다.
7월 15일까지 대학로 바탕골소극장에서 상연되는 극단 로얄시어터의 ‘누이야큰 방 살자’는 우습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10년 넘게 아파트 입주권 ‘딱지’만을바라보며 사는 상철(윤여성)과 상미(주소영) 남매, 그들의 꿈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빗물 새지 않는 방에서보송보송한 이불을 덮고 사는 게 유일한 희망일 뿐이다.
상미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7년째 악착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건만 현실은 조금도달라지는 게 없다.
비 새는 지붕을 막으러 올라갔다가 그곳에 죽어 널부러진 뚱뚱한 쥐를 발견한 상미,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꼬리를 집어 내던지며말한다. “쥐는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운거야.” 마치 가난처럼.
‘딱지’를 생각하며 길을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한 상미는 종합진단 과정에서 양성 뇌종양이 발견된된다.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3년 후, 머리를빡빡 깎은 상미와 출산을 앞둔 상철 부부는 또다른 ‘딱지’를 기약하며 다른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삶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이어진다. ‘노력=성공’이라는 섣부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지 않는다. 그래서다소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
98년 삶의 애환을 유쾌하게 다룬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를연출하기도 했던 작가 김동기는 “민중이 보듬어 안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수시로 “애국시민 여러분- ”을 외치며 동네를 누비는 고물수집상, 동네 카바레의‘차차차’ ‘아파트’ 등의 노랫가락이 가끔 실소를 자아낸다.
우체부, 검침원, 간호사 등 1인 5역을 능청맞게 해내는 박정순의 연기도 볼거리.삶에 찌든 신산한 모습 사이로 해학적인 풍경들이 적절히 배어 있다. (02)744-8025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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