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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일하는 아내, 밥하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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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일하는 아내, 밥하는 남편

입력
2001.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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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로 있던친구가 남편이 사업에실패하자 생계벌이에 나섰다.나이도 많고특별히 돈 벌 대안이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아내가 생계를 맡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도않은 일이지만 가능하다 해도 본인도주저하고 남들도 말린다.

이유는 간단하다.그러다가 남편이 끝내제대로 된 밥벌이를 못하고,대충 실업자로 부인한테 의지해서 살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나 역시 ‘남자는 실업자가 되거나 가정경제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 안되는 거니’ 라는, 뭔가 양성평등에 가까운 말을 하지못했다. 현실에서는 철없는이야기가 될 걸 알기때문이었다.

나나 그친구나 말리는 주변사람들 머리 속에 상식처럼 자리잡은 모습은 한가지다. ‘실업한 남자,가정경제를 책임지지 못하는남자는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제 몫을 못하고 무위도식하거나 알코올중독 등 자기파괴적이 되기가십상이다.

반면남편을 대신해서 생계비를 전담하는 여자는살림과 아이를 돌보는것과 돈벌이까지 책임지면서 점점 거세지고 돈못 벌어오는 남편을 노골적이든 은근히든 무시한다.’

그친구가족은 벌써 그도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무슨 일을 하는지 잘모르겠을 남편은 항상술에 취한 채늦게 들어오고, 친구는 저녁늦게 일터에서 돌아와서 그때부터 밥을 하고아이들을 돌본다.

점점 멍해져가는 듯한 친구 남편과, 자신이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긴장을놓지 않고 억척스러워져가는 듯한친구. 삶에 도움은커녕 짐만 되는듯한 남편에친구는 짜증과 불만이넘치고.

문제는 크게잘못한 것도 없이, 악의도 없는 이 두사람이 남편의 실업이라는 현실 앞에 무력하게 삶의균형과 행복을 놓쳐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안정적임금근로자의 기본인 상용직근로는 93년도 58.8%에서 10% 이상 줄어들어 2000년 1월에 47.7 % 수준이라고 한다.

계약직이 상용직보다 더 많은 52. 3%를 차지한다. 이 중 임시직은 34.7% 이고 그보다 더 불안한일용직은 17.6% 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은이미 무너졌다.

너무 유연해진 노동시장덕에 본인의 노력여하에 상관없이 길든 짧든 실업은 많은 이들에게 반드시닥치고야 말 현실이되었다.

IMF 이후 소규모자영업이나 서비스업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기반잡기가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실업한남편, 또는 아주보조적인 돈벌이밖에 못한남편을 둔 가정은계속 늘 수밖에없다.

그렇다면 오래된남녀간의 역할 분담,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하고’의공식, 그것을 중심으로 한 생활문화나 가치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IMF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이 급격하게 늘었다.그러나 아마 더정확하게 말한다면 그것은경제적인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에탄력있게 대처할 생활문화나 가치관이 준비가 안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적어도한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불안정한 고용조건과 남녀간의 고정된역할분담이 같이 가기는힘들다.

사회노동도 제대로안 하면서 가사노동도 분담을안 하는 남편의 무기력함, 뻔뻔함과 가사노동까지 전담하는 여성의 억울함과 고단함의 불균형에 의한 갈등은깊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패러다임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현실의여건이 되는대로 열심히일하고 가사노동도 나누면서 항상 누구든 실업할수 있는 현실을인정하고 준비할 때, 예측하기 힘든 고용현실의 변화에대응할 탄력성을 가질수 있다고 본다.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노동이든 그렇지않아 온 가사노동이든 성별로 나누기 이전에사람이 살기 위해서 꼭해야 하는 중요한 노동이니까.

권인숙 사우스플로리다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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