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의 섬 진도“진도의 산과 바다와 들에서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음악이 울린다.” 에세이스트 김훈은 진도 여귀산(女貴山)에서 맞이한 새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언어에대해 안달’하다 결국 ‘음악을 들었다’고 쓰고 있다.
서해의 끝자락에 한반도의 ‘엄지 발가락’ 같은 모양으로 새겨진 보배로운 섬 진도. ‘원형의 섬 진도’(이레 발행)는 진도의 자연, 문화, 역사, 삶을 사진작가 허용무씨의 작품과 김훈의 글로 짠 여행기이다. 하지만 여행기라고만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정확히 여행기의 틀을 빌린 한 고장의 현재와 과거에 대한 총론이라 할 수 있다. 섬이지만 바다보다는 들에 기대어 생업을이어가는 진도의 ‘맑고 순한’ 풍광 묘사나 산 자와죽은 자의 화해 의식인 씻김굿 등의 구체적인 장면 묘사는 그 곳에서 만난 진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진도와의 깊은 대화로 유도하고 있다.
책은 더 나아가 진도의 과거로 들어간다. 허소치에서 허백련에 이르는 한국 최고의예맥과 한국 남종화의 요람 운림산방의 자취를 실증자료와 현재의 모습을 교차시켜 세심하게 찾아간다.
또 임진왜란 명량해전과 삼별초 유적지를 더듬어가며 겨레의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피흘린 섬으로서 진도의 모습을 조명한다.
허용무씨의 사진이 진도의 숨결을 그대로 전해주면 김훈씨의 글은 그 큰 줄기에서미세하게 뻗어나간 잔가지의 역할을 한다.
김씨는 “허용무의 사진 옆에 몇 줄의 글을 붙이는 기쁨이 크다”고쓰고 있다. 그만큼 사진이 생생하다. 김씨의 글은 그의 특장대로 섬세하고 아련한 울림을 남긴다.
그러나 진도를 담은 사진과 글이 아름다울수록 책 전권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는‘젊음’의 흔적은 진도의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살아있는 ‘미래’를담지 못한 이 책이 곧 희미해질 진도의 숨결을 뜻하는 마지막 씻김 의식 같기 때문이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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