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독일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볼프강 힐비히(60)가 통일 이전동독사회의 음울한 실상을 조명한 문제작‘나’(책세상 발행)가 번역출간됐다.
‘나’는 “그러니까우리는 아무 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 는 절망적 전언으로 시작한다. 통독 당시 밝혀진 바에의하면 1,600만 동독 주민 가운데 무려 24만 명이 슈타지로 활동했다.
슈타지는 국가안전부 즉 구 동독 비밀경찰의 약칭.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방식으로 그들은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힐비히의 ‘나’는 이러한 체제에서 구 동독의 몇몇 작가들이 국가안전부의 스파이로 밝혀진 실제 사건을바탕으로 하고 있다.
힐비히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밑그림으로 지상과 지하의 세계, 꿈과 현실을 교차시키는소설기법으로 숨막힐 듯한 현실에 시달리는 분열증적 인간을 그린다.
주인공 M은 작가이자 국가안전부 비밀요원. 그는 ‘리더’라는작가가 국가에 적대적임을 증명하기 위해 24시간 그를 감시하고 있다.
소설의 시간은 1961년 8월 13일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시점에 멈춰 있고,M의 의식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데 편집증적으로 묘사되는 베를린의 실제 장소들은 그대로 숨막힐 듯한 동독의 현실을 드러낸다.
그에게는 ‘나’가없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M 역시 그가 감시한다고 믿었던 리더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슈타지의세계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삶의 그림자였고 죽음이었다. 그렇다, 우리는밖에 세워둔 증오 그 자체일 뿐이었다.”
힐비히는 금속노동자이자 작가로서 시민권이 박탈된 동료시인을 옹호하다 추방되기도했다. 1985년 서독으로 이주,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암울함’을그리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89년 잉게보르크 바하만상, 92년 베를린문학상을 받았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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