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는 2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2차 오일쇼크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와제조업체들의 연쇄도산도 큰 원인이었지만, 과도한 사회보장부담과 임금인상 및 심각한 노사갈등으로 경제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네덜란드병(病)’이었다.네덜란드가 20년전 ‘작고병든 나라’에서 오늘날 ‘작지만 강한 나라’,즉 강소국(强小國)으로 재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동인은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합의였다.
파국으로 향한 평행선을 달리던 네덜란드 노조와 경영자단체는 82년 ‘바세나 협약(Wassenarr Accord)’이란 대타협을 도출해냈다.
경영자단체는 노조가 요구한 5% 노동시간단축과 노동기회재분배를 통한 고용창출(job-sharing)을 수용했고, 대신 노조는 임금인상과 불필요한 분규억제를 약속했다.
노조는 특히 임금의 물가연동제 2년간 유보함으로써 실질임금이 9%나 줄어드는 것을 감수했다. 고용주가 사실상전담하던 사회보장세를 노동자들이 일부 분담하는 것도 받아들였다.
실질소득감소와 실질부담증대를 초래하는 조치가 마음에 내킬 수는 없었지만, 네덜란드노조가 합의안에 도장을 찍었던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이었다.
노사간 한발씩의 양보로 대국적인 ‘상생(相生)의 미학’을실현한 네덜란드는 임금인상률 둔화 속에 기업경쟁력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기업의 투자수익률이 82년 5%에서 95년17%로 올라갔고, 결국 오늘날 남부러울 것 없는 강소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가뭄과 무더위로 지친 국민들을 더욱 불안케했던 최근의 민노총 파업사태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사람과 물건을 싣고 하늘을 날아야 할 비행기가 활주로에 늘어 서있고, 병든 환자들이 병원대기실에서 발만 구르는 모습, 석유화학공장에힘찬 기계소리 대신 근로자들의 구호소리만 들리는 장면은 가희 ‘한국병’이라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97년 환란이후 노동자들이 치른 대량해고와 고용불안, 급여감소 등을 감안하면 그들의 불만과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구조조정의 고통을 정부, 기업보다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짊어졌다는 주장도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판을 깰 수는 없는 일이다. 불과 3년전 초토화를 경험했던 한국경제는 판을 깨고 다시 짤 수 있을만큼 넉넉하지도, 탄탄하지도 않다.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외국인투자가들이 발길을 돌리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파업사태는 판을 깨자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번 파업에 국민반응이 어느 때보다 냉담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다. 이젠 ‘구조조정’이란말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조가 ‘구조조정 중단’을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모습에 식상함과 거부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성공할 수 없고, 그렇다면 노조의 주장과 의사표현도 경제사회적 변화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의 노조를 ‘전투적’ ‘호전적’‘적대적’이라고 평가한다. 10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노동운동의 패턴이 이렇게달라지지 않은 나라도 없다.
‘춘투’가 유명무실해진 일본, ‘노동의 종언’이란말까지 나오는 미국을 닮자는 얘기는 아니다. 파업은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최후 무기이지만, 그렇기때문에 좀 더 아껴쓰고 설득력있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처럼 ‘요람에서무덤까지’ 국가가 보장해주고, 해고가 생존의 문제로직결되지 않는 선진복지국가와 수평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들보다 훨씬 절박하기에 노사간 ‘상생의 미학’은더욱 절실한 것이다.
배정근 경제부장 jkpae@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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