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색깔이 있다.” 배구 슈퍼리그 5연패(連覇)도 모자라 V_코리아리그까지 전승 우승한 삼성화재 신치용(46)감독은 ‘냉정한 승부사’로통한다. 그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온화한 표정은 단지 코트에서 보여주는 대외용일 뿐이다. 숙소 바로 옆 연습장에서는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 훈련이 마음에 안들면 코치에게 “안되겠어”라는 한 마디만 던진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신음소리가흘러나오기 마련이다.고된 훈련을 못 이겨 “우리는 훈련하는기계가 아니다”라며 퇴진을 요구하는 항명파동도 겪었다. ‘집중력’을철저하게 신봉하는 그는 실전에서 아무리 잘해도 훈련을 대충하는 선수는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성격을 아는 선수들은이제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성적으로 강훈의 효과가 증명됐기 때문이다.
신 감독의 ‘색깔’은한국전력코치 시절 다듬어졌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을 데리고 성적을 올리려다 보니 강훈밖에 없었다. 거기다 대표팀 코치시절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보고 배운 노하우가 보태져 오늘날 신 감독의 지도스타일이 탄생했다.
“한전시절 하루 운동하고하루 근무하는 식이었죠. 근무할 때 일이 별로 없어 이론공부를 많이 했습니다”라고밝힌 신 감독은 이때 쌓은 노하우가 큰 자산이 됐다고 들려주었다.
신 감독은 훈련 때도 반드시 유니폼을 통일하도록 한다. 일체감을 만들기 위해서다.꾀를 부리는 선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신진식이 귀여운 까닭은 훈련자세 때문이다. 운동장 30바퀴돌기 선착순을 시키면 사력을 다해 1등을 한 뒤쓰러져 업혀 들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신진식은 혹독한 훈련으로 과도한 스윙폼을 근육에 적응시켰다.
“언젠가 한 선수가 발목이 안 좋은데 체중이 불어나는바람에 상태가 더 나빠져 체중을 빼라고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죠. 그랬더니 그 선수의 부인이 찾아와 ‘사람이 어떻게그렇게 비인간적이냐’고 따지더군요.” 신 감독은 3시간동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선수 부인은 이제 명절 때만 되면 빼놓지 않고 넥타이 등을선물하는 열성팬이 됐다. 신 감독은 그만큼 세심하다. 너무 선수들을 챙겨 불만을 사기도 한다. 매일 아침 6시전에 일어나 매사를 치밀하게 준비하는철저함에 선수들은 질려버린다. 세터출신 신영철, 레프트이면서 수비가 좋았던 서남원코치를 데려온 것도 자신의 팀컬러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덕이 없으면선수들이 따르지 않는다. 죌때 죄고 풀어줄 때 풀어줄줄 알아야 한다. 창단 이듬 해 항명파동이 있자 신 감독은 “내가 못났다. 그만둔다”고 선언했다.놀란 선수들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지 일대일 면담을 갖고 잘 해보자고 설득했다.
그 해 첫 우승을 일궈냈다. “선수들이 술이 세요. 회식때 골탕좀먹어봐라 하면서 글라스로 소주를 따라주며 집중공격하더군요. 마다하지 않고 다 마십니다.” 신 감독은 만취가 될 때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술자리를끝냈다. 이제 선수들은 술 갖고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는다.
신 감독은 요즘 골프에푹 빠졌다.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한 스포츠라 배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보기플레이어 수준인데 틈만 나면 숙소 옆 연습장에서 스윙을 가다듬는다.비시즌에는 1주일에 2, 3차례 필드에 나간다. 당구(200점) 바둑(5급)도 짠 수준.
하지만 숙소에서는 스스로 앞장서서 일체 잡기를 못하게한다. V_코리아리그 이후 일각에서 “삼성 혼자 다 해먹어라”고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신 감독의 마음은 답답하다. 그는 “체력과 기본기가 뒤지는상대팀들을 탓하지 않고 이긴 팀을 비난하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다”면서도 “어쨌든 배구인기의 하락에 일조했으니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죠”라고책임감을 잊지 않는다.
코치, 감독으로 대표팀에만10년을 매달려 큰 딸(18)이 “아빠는 배구만 중요하잖아”라고 섭섭해 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 숙명여중 농구코치를 하는 부인 전미애(41)씨와선수인 둘째 딸(16)과도 잘 만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래서 그는 내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날 생각이다. 소속팀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뜻도 있지만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서다.
●신치용 감독 약력
1955년 8월생
185㎝, 88kg
경남 거제 출생
성지공고 성균관대졸
한국전력 선수
한국전력 코치
삼성화재 창단감독
1999년 국가대표감독
이범구기자
lbk1216@hk.co.kr
■김철용 감독이 본 신치용
30년간 절친한 친구로 신치용 감독을 지켜본 여자배구 LG정유의 김철용 감독은“스스로에게 엄격한 외유내강형”이라고 친구를 평가했다. 김 감독에 따르면 학창시절신 감독 주위에는 유난히 친구들이 많았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성격과 포용력에 유머감각까지 갖췄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명장 신치용’을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타고난 부지런함과 승부근성, 뛰어난 통찰력을 꼽았다. 선수시절 겉으로 드러나는 파이터는 아니었지만‘지고는 못사는’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김감독은 “신진식과김세진도 신 감독의 철저한 조련이 없었다면 오늘날 최고의 공격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전코치시절 국가대표코치를 겸하면서 일찍 세계배구를 현장에서 접했던 점도 신 감독의 지도자생활에 크게 도움이 됐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김 감독은 “치용이가 나 때문에한동안 담배도 끊고 주일학교 선생도 했었다”면서 “가끔 비꼬는 듯한 말투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이 점은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충고했다.
1970년 처음 만난 두 감독은 성지공고를 거쳐 성균관대까지 7년간 함께 선수생활을 했으며 이후 30여년간돈독한 우정을 쌓아왔다. 김 감독은 “남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점은 나와 다르지만 운동에 대한 철학이 비슷해 서로잘 통한다”고 말했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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