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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DMZ를 가로지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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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DMZ를 가로지르는 길

입력
2001.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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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에 허덕이던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이 육로개발 가능성에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 입구에 있는 삼일포까지 13.7㎞ 길이의 국도만 연결하면 속초에서 금강산까지 불과 60㎞ 남짓이란다.자동차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현대아산은 매년 설악산을 찾는 1,000만 명의 관광객 중 10%만 금강산으로 올라가도 100만 명이라는계산을 바탕으로 곧 연간 500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대한다는 사뭇 장밋빛 넘치는 전망을 내놓았다.

감히 우리 시대 마지막 영웅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고(故)정주영 회장이 시작한 사업이 최근 중단 위기에 몰려 못내 안타까웠는데 이처럼 되살아날 조짐을 보여 참 반갑다.

하지만 그 동안 마음놓고 동해 바닷가에내려갔다 돌아오곤 하던 비무장지대의 동물들을 생각하면 착잡하다.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로부터 뚫어야 하겠지만 자연에게 길은 한 마디로 사약이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했지만 자연 속에 난 길은 모두 저승으로 통한다.

워낙 산이 많은 나라라서 우리 나라의 길은 자주 산허리를 감돌게된다. 높은 산을 곧바로 오를 수는 없고 하여 완만하게 산세를 따라 감아 올랐다간 감아 내린다.

산과 산 사이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고 길은 또그 물을 따라 흐른다. 자동차를 몰고 강줄기를 따라 난 길을 달리면 시원한 강바람에 경치 또한 그만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즐기는 동안 길이 끊긴동물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발만 구른다.

많은 동물들이 강과 산을 오가며 살게 마련이건만 우리 나라의 동물들은 그 자유를 뺏긴 지 오래 됐다. 예전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동물들의 상당수는 결국 어느 날 길 위에 눕고 만다.

한반도의 등뼈와도 같은 백두대간은 평균 8㎞ 구간마다 도로로 끊겨있다. 동물들은 이제 더 이상 이웃 산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지 못한다.

다행히 환경부는 몇 년 전부터 백두대간을 다시 이어주는 작업에 들어갔다.구체적인 사업으로는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움직여 다닐 수 있도록 이동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인데 사전 조사의 부실과 위치 선정 실패로 이렇다할 실효를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직접 가본 지리산 시암재와 강원도 구룡령 등에 설치한 이동통로도 이용하는 동물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장장 반세기 동안 인간의 그림자가 비추지 않았던 이유 하나만으로자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무장지대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온대 원시림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을 주축으로 하여 이 엄청난 생태계의보고를 ‘평화공원’이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남북이 통일되면 여기저기에서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도로를 건설하기 바빠질 것이다. 지도를 펴놓고 예전에 있었던 도로들을 짚어 보라. 끊어진 도로를 이어줄 곳만 해도 줄잡아 열 곳은 족히 된다.

우리 나라의 비무장지대가 퍽 넓은 곳으로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많은 것 같다. 기껏해야 248㎞ 길이에 4㎞ 폭을 가진 좁고 긴 땅이다.

전체 면적이 907.3㎡, 즉 2억7,000여 평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나라 사람들도 이젠 퍽 많이 가본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솔직히 말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땅덩어리다.

그 작은땅을 10여 개의 도로가 가로지르고 나면 아마 아무도 남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미국의 생태학자들과 장차 도로가 이어졌을 때 비무장지대의 운명이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생태 시뮬레이션 연구를 하고 있다. 분석을 해봐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이미 뻔한 것 같은 느낌이다.

통일에 대비하여 우리는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고민해봐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

경의선으로 서쪽을 막고 이제 국도 7호선으로 동쪽을 막으면 일단 포위가 끝난다. 그리곤 차츰 중간중간 도로를 연결하여 토막을 내고 나면 그걸로 끝장이다.

보전생태학의 중요한 개념 중에 ‘가장자리 효과(edge effect)'라는 것이 있다.비록 같은 면적의 땅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 하더라도 도로를 건설하느라 몇 개의 작은 지역으로 나누면 그만큼 가장자리가 늘어 천이의 초기단계에유리한 기회주의적 동식물들만 들끓을 뿐, 가장자리로부터 중심부까지의 거리가 짧아져 넓은 지역을 필요로 하는 큰 동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통일은 되었는데 끊긴 길은 그대로 두고 비행기나 배로만 왕래하라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몇 군데는 길을 내야 한다.

비무장지대를 세계적인 생태보호지역으로 만들어 학술, 환경, 그리고 관광 이득을 얻으려면그곳을 관통하는 모든 도로들을 터널 또는 고가도로 형식으로 만들어 환경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북한이 미리 파놓은 땅굴을 사용할 수는 없는지 궁금하다.물론 공사비가 더 들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봐야 겨우 4㎞밖에 되지 않는 길들이다.

우리 기술로 못할 일이 결코 아니다. 조금 힘이 들더라도그 길만이 꿩 먹고 알 먹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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