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문학이 전공이다 보니, 그 나라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독일 키일에 사는 노부부는 특히 기억에 남는 독일인이다.괴테의 작품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온 세계에서 나온 거의 모든 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부부는 대 괴테 전문가들도 ‘헤르만과 도로테아’에 관한 한 자기들을 찾아온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그런 장서가가 된 이유는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남편의 이름이 헤르만이고 아내의 이름이 도로테아여서 ‘헤르만과 도로테아’라는 제목의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부부가 만나고 보니 이름이 몽룡과 춘향이어서 세상에 있는 ‘춘향전’ 판본을 다 모아 버린 셈이다. 초라해 보일 정도로 소박한 그들의 생애가 그 책들로 하여 얼마나 빛났을까.
재작년 여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는 더 놀라운 부부를 만났다. 그곳에서 내 강연을 들은 사업가 부부가 행사 끝나거든 자기들 집에서 묵어 가기를 간곡히 권해왔다. 놀랍고 고마워서 인사차 하룻밤쯤 묵을 생각을 하고 그 집에 갔다가, 그만 열 하루를 머물렀다.
방에 들어서니 책상 위에는 필자가 강연했던 괴테의 ‘서동시집’의 초판본(1819년),1800년에 나온 고풍한 가죽장정의 ‘파우스트’본 등 희귀본들이 놓여있고, 창턱에는 손님이 관심을 가질 만한 스크랩된 기사가 2미터쯤 늘어놓여 있었다.
기사들은 날마다 조금씩 교체되었다. 밥 먹으며, 차 마시며 이야기를 조금만 나누다 보면 문학이든 역사든 금방 관련서가 책꽂이에서 뽑혀 나오고, 그 책에는 관련 기사나 그 책과 연관된 서신 등이 빼곡히 끼워져 있었다.
그 책이며 그 글들이 도저히 안 읽고 돌아올 수는 없는 귀한 것들이어서 염치불구하고 열 하루씩이나 머물고 만 것이다. 돌아 온 후에도 그 부부는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전공관련 소식, 한국에 관한 뉴스 따위를 오려 모았다가 가끔 한 뭉텅이씩 보내주고 있다.
홀레씨는 사업가이고 아내는 평범한 주부이다. 사업으로 번 돈을 괴테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돈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학술강연회, 문화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주체이다.
지난 주에 며칠 바이마르 괴테학회에 참석했을 때도 홀레씨는 어김없이 와 있었다.
그 학회에서는 늘 많은 인상깊은 사람들을 만난다.80세가 넘어 붙잡은 ‘파우스트’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이제 박사학위를 시작한 할머니도 왔고, 같은 호텔에 묵은 덕에 아침식사 때마다 괴테 이야기를 나누며 의당 독문학교수거니 했던 부부는 나중에 보니 정신과 의사였으며,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와서 보살피며 부부가 번갈아 절반씩 강연을 듣는 부부는 유명한 출판인이었다.
이 부부를 위해서는, 저녁의 연극만은 둘 다 볼 수 있도록 홀레씨가 슬며시 베이비씨터를 물색해 주는 것을 보았다. 학회 마지막날에는 사무원 책상 곁에 홀레씨가 나한테 전해주라고 맡긴 책이 한 가방 놓여있었다. 덥썩 들고 갈 수는 없어 주인을 찾았더니, 들고 가기 무겁겠다며 부쳐주겠다고 다시 가방을 들고 가버렸다.
홀레씨 부부가 평생 보살핀 사람이 먼 극동에서 온, 조그만 독문학자 한 사람 뿐이겠는가. 그 집에 남아 있는 수많은 편지를 보고 여러 일화들을 들으며, 그들의 생애가 참 아름다워 보였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 대신 그들은 다른 종류의 나눔으로 자신의 삶과 남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슬기를 깨친 사람들이었다.
홀레씨는 한 강연문에서 자신이 왜 평생 이윤 없는 문학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이야기하며 이런 평범한 구절로 끝맺고 있었다. “문학은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
유럽에서 어떤 국가적 차원의 문화정책이나 발전된 문화시설보다도 더 부러운 것은 그런 여유이다. 그것은 물론 사회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또한 그런 개인들의 여유가 사회의 여유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영애 서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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