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의 미국이 국제적 고립에 빠져들고 있다.부시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정상회담에서 유럽측으로부터 예상보다 더 혹독한 비난에 직면했으며 16일 이번 순방의 마지막 행선지인 슬로베니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취임 후 처음 가질 정상회담에서도 성과를 얻기 어려운 처지이다.
첨예한 이슈인 미사일방어(MD) 체제와 교토(京都)의정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전달하는 데 실패한 부시 대통령이 유럽보다 더 어려운 협상 파트너인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적 성과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시각이다.
부시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우방의 동의 없이 MD를 추진하겠다” 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정부 내에서 조차 “MD체제의 광범위함과 비용,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 등을 들어 유럽의 협조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하기는 어렵다” 는 이견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
최대 안건은 역시 MD지만 ‘상하이(上海) 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이미 사전조율을 마친 러시아의 이해를 끌어내는 것은 이미 ‘물건너간’ 사안이라는 게 대체적이다.
러시아는 오히려 사면초가에 빠진 부시의 외교적 상처를 이용, 이번 정상회담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미국과의외교전에서 실추시켰던 러시아의 위상을 다시 회복시키는 자리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현지에서는 “부시의 영어 실력보다 푸틴의 러시아실력이더 낫다” 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양국 정상회담은 2시간 가량 진행된 뒤 합의문 없이 끝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크렘린궁측은부시의 외교적 미숙함을 활용, 아킬레스건인 체첸 문제와 부진한 경제개혁 대신 국제테러, 핵탄두 감축 등을 집중 거론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 때문에 백악관 참모진은 부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없애고, 회담 분위기가 경직될 때에는 경제문제로 화두를 바꾸라는‘정상회담 수행 지침’ 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측은 다만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의 골격은 흔들 수 없다는 원칙아래 타협을 통해일부 부속조항에 대해서는 수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MD외에 러시아가 이란에 지원한, 우라늄으로 전용 가능한 고농축알루미늄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우려가 회담에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EU와 미국의정상회담
중동과 한반도 정세, 교토의정서,MD, 발칸, 통상문제 등을 논의한 EU_미국 정상회담에서 핵심 현안인 MD와 교토 의정서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못한 것 보다도 나쁜 결과를낳았다.
양측의 입장차를 재확인한 것은 물론, 정상들간 개인적 신뢰에까지 흠집이 갔다는 게 중론이다.
성과라고 한다면 “교토 의정서에 대해 양진영이 협조를 재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데 합의했다” 는 지극히 외교적인 수사와 1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각료협상에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라운드를 출범시키자는 것 정도이다.
EU측은 정상회담 후 “미국의 참여가 없더라도 교토 의정서에 대한 유럽 각국의 비준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 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의 정상회담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4일 상하이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예상대로 MD와 ABM 협정 폐기에 대한 강력한 반대입장을 재확인했다.
러시아는 깡패국가의 위협을 들어 미국이 MD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러시아의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국정상회담은 반미 공동전선을 더욱 공고히 하는 자리가 됐으며 러시아가 중국을 이용해 미국에 외교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항하는 카드로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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