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4일 소년용 만화 ‘천국의신화’의 작가 이현세(李賢世)씨에 대해 “만화의 장르적 특성상 그림, 영화와는 다른 음란성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그간선정성 논란에 시달려온 만화 장르에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허용될 전망이다.재판부는 “대상의 성격을 과장하거나생략하는 만화의 특성상, 그 암시적 표현이 주는 음란성이나 잔인성의 느낌이 천차만별이어서 그림이나 영화 장르와 달리 음란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이씨에게 면죄부를 줬다.
‘천국의 신화’에 나오는 세련된 나체의 여성이나 수간(獸姦)을 암시하게 하는 장면에 대한 만화적 묘사가 청소년에게 음란성을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작품이 원시시대 신화를배경으로 해 일부 잔인한 장면의 묘사 역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특히 일상에서 TV나 컴퓨터게임을 늘 접해 온 청소년들에게 만화 장르의 흑백그림은잔인성에 대한 시각적 효과가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천국의 신화’의 주 구독층이 이미 각종 선정적 대중매체에 노출돼 있는 15세 이상 미성년자라는점도 작용했다.
이같은 판결은 작가 이씨가 검찰에의해 약식기소됐으나 정식재판까지 청구, 재판부에 창작의 자유를 요구하며 주장한 것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에 바탕한 만화적 묘사에까지음란성 잣대를 들이댄다면 창작 의지가 꺽일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이씨는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기자들과만나 “검찰의 기소로 창작욕을 잃어버려 3년여 붓을 꺾었지만 이제는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씨는 1997년 검찰조사가시작되자 100권 분량으로 기획했던 이 작품을 8권까지만 내고 집필을 중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록 작품 전체 중극히 일부지만 집단강간 묘사 부분은 음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날 판결은 “음란성 여부의 판단 잣대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때 더욱 엄격하고제한적이어야 한다”며 ‘청소년보호론’을 우선시한 1심 판결과 엇갈려 만화가단체와 시민단체 사이에 표현의 자유를 놓고 또 한번 논쟁이 재연될 것으로보인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