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3월11일 외교부에 ABM 조약이 한러공동성명에 들어간 데 대한 경위서를 제출토록 지시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고, 김 대통령이 미국 조야를 대상으로 경위를 해명해야 하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당시 외교부는 반기문(潘基文) 차관주재로 관련자 전원이 모여 2, 3차례 대책회의를 가진 뒤 다음 날 청와대에 경위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과 외교부 고위관계자들이 관련자를 문책 할 경우 우리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정빈(李廷彬) 장관과 반기문(潘基文)차관이 3월26일과 4월2일 경질되면서 청와대와 여권 내부에서 정확한 진상조사와 함께 실무 책임자 문책이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청와대민정수석실은 4월23일 외교부 감사관실에 재조사를 지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와 서류 검토가 이뤄졌다.
청와대는 조사 결과를 종합한 ‘한러공동성명 관련 사항 조사 보고’에서 “문제된 문구의 양자적, 다자적 문맥에 정통하지 못한 실무자의 업무상 실수와, 주미 한국대사관측과의 협의를 동구과에서 수 차례 요청했으나 이를 일축한 외교정책실의 고집이 사태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외교부의 기강을 엄정히 하고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 자들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다”는의견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최영진(崔英鎭) 외교정책실장,최성주(崔盛周) 전 군축원자력과장 등을 징계에 회부하고, ▦이수혁(李秀赫) 구주국장, 김성환(金星煥) 북미국장, 장호진(張虎鎭) 전 동구과장은경고 처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 ▦김일수(金一秀) 구주국 심의관, 김원수(金垣秀) 청와대 외교안보비서관 등은 주의처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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