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거센 제주항은 위태롭게 느껴진다. 근처 해발 184㎙ 사라봉(沙羅峰)에서내려다 봤을 때는 아늑한 풍경이었는데, 소금기와 비린내 풍기는 항구에 서면 사정은 달라진다.콘크리트 방파제를 사정없이 때리는 파도, 검푸른 바다를내리누르는 회색 하늘, 서둘러 귀항하는 오징어잡이 배에서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국내 해양문학의 고전 장한철(張漢喆ㆍ1744~?)의‘표해록(漂海錄)’을 영화로 만든다면 첫 장면은 이런 날씨, 이런 항구에서 촬영해야 제격일 것이다.
높은 파도와 퍼붓는 비, 적막감이 감도는 항구.선비 장한철이 230년 전 과거를 보러 한양을 향해 제주항을 떠났을 때도 하늘과 바다와 항구는 이러했으리라.
‘표해록’은 국문학 작품으로는 드물게 자신이 직접 체험한바다와 선원들의 사투, 계속되는 조난과 모험을 생생한 일기체로 적은 본격 해양문학이다.
조선 성종 때 문신 최부(崔簿ㆍ1454~1504)가 쓴‘표해록’이 육지에서 제주로 오다 풍랑을 만나 중국 저장(浙江)성에 표류한 내용이라면, 장한철의 ‘표해록’은 제주에서 내륙으로 가다 겪은 구사일생체험담이 주를 이룬다.
‘어렴풋이 (배에 탄) 사람들을 바라보니, 서로 앞을다투어 배에서 뛰어내린다. 나도 마음이 급하기만 한지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랬더니 가슴이 물속에 잠겨있는 바윗돌에걸린다. 기쁘게도 살길을 얻은 셈이다.’(이하 정병욱 역 ‘표해록’ㆍ범우사 발행)
‘이윽고 왜인들은 칼을 빼어 휘두르고 큰소리를 지르며달려들어 몸에 걸친 옷을 발가벗기고는 꽁꽁 묶어 나무 위에다 거꾸로 매단다.
저 왜놈이란 종자는 사람에게 터럭만한 이로움도 주지 못한다. 하늘이어찌 이런 종자를 만들어내었을까.’
북제주군 애월면 애월리 태생의 장한철은 향시에서 장원을한 1770년 12월 25일 한양으로 과거 길을 떠난다.
그러나 일행 29명을 태운 배는 폭풍우로 인해 4일만에 일본 류큐(琉球) 열도의 한 무인도에도착하고, 그곳에서 왜구를 만나 알몸이 되는 수모를 당한다.
이듬해 1월 6일 겨우 전남 남해의 청산도(靑山島)에 도착했으나 생존자는 불과 8명이었다.장한철은 이후 2월 4일 한양에서 과거를 봤으나 떨어지고 5월 8일 고향에 돌아와 이 글을 썼다.
그의 일행이 얼마나 위험한 항해를 감수했는지는 현재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제주 전통 목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층 전시장에 고기잡이 용 뗏목 ‘태우’와 함께 전시된 이 목선은 주로 옥돔이나갈치 잡이에 쓰이던 것으로, 돛과 노를 함께 갖춰 풍력과 노동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갑판의 이음새와 돛의 두께, 닻의 크기,배의 높이 등으로 볼 때 태풍 앞에서는 무력할 것만 같다. 장한철도 이를 염려하고 한탄했다.
‘이 배의 닻에는 돌만 있고 삼지(三枝)가 없어 끝내배를 해안에 대지 못하고 말았다. 배에 고인 물은 이미 허리까지 차게 되어 물에 빠져 죽을 재화가 시각을 다툰다.
멀리 한 돌섬이 서 있고 돌부리가미친 듯이 출렁대는 물결 위로 마치 성난 짐승의 이빨처럼 드러나 있다. 배는 지금 그곳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 돌섬에 부딪히기만 하면 파선할 것은뻔한 일이었다.’
“당시 제주 전통 배의 구조와 항해술, 해로와 해류,계절풍의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해양지리서이자, 제주의 삼성(三姓)신화나 백록담 전설, 일본 오키나와 태자의 전설 등을 담은 신화ㆍ전설집으로도가치가 있다.
또한 고래와 파란 사슴을 보고 혼비백산하는 기괴한 체험담, 뭍에서 처음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는 로맨스 등 중세 문학작품으로서갖춰야 할 것은 다 갖췄다.”
15일 개관과 함께 ‘표해록’ 원본을 상설 전시할 국립제주박물관의장제근 연구사는 흥분된 어조로 말을 잇는다.
그의 지적처럼 ‘표해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책 말미에 나오는 로맨스다. 장한철이 남해 청산도에도착한 후 우연히 만난 스무살 가량의 처녀와 맺은 잊을 수 없는 하룻밤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연상되는 숨막히는 풍경이다.
‘이날 밤 나는 당촌에 가서 그녀의 집 안에 뛰어들었다.산골짝의 맑은 달이 창을 비추고 있어 방 안이 환하다. 그녀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가 앉는다.
혹은 수줍어하며 교태를 보이기도 하고, 혹은 짐짓노한 체하며 마구 욕설을 한다. 그러나 잠자리에서는 서로 기쁨을 나눔에 미쳐서는 마음이 혼곤히 흐믓해져 성내어 꾸짖던 소리는 뚝 끊어진 지 오래다.’
몸도 상하고 과거에도 떨어져 5개월 여 만에 고향인제주에 도착했을 때 장한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난 바다의 공포였을까, 이국적인 류큐 열도의 풍경이었을까, 아니면 꿈 같은 운우지정을 나눈그 여인이었을까.
그가 고향 도착 후에 맑은 날을 골라 올랐다는 한라산은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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