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세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저항은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시인은 노래했다.“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세상이 달라졌다’)
정희성(56)씨가네번째 시집 ‘詩를찾아서’(창작과비평사발행)를 펴냈다. ‘한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이후 10년 만에 부르는 노래다.
오랜 시간 내면에서 곰삭인 언어는 맵고 짠 강렬함 대신 은은하게 감기는 맛이 깊게 배었다. 시인은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마냥 시 쓰는 것이신기하고 설렌다”고털어놨다.
가파른시대에 강퍅한 말을 썼던 적도 있다. 1978년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내놓았을 무렵에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 있었다.
13년만에 출간한‘한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무섭게 절제하는 깐깐한 시어들로 가득 찼다. 시인은 다시 침묵했고, “오랫동안 참고 말 안하는 버릇을 들이게 됐다”. 그는 즉각적인 반향으로서의시의 응전력을 알고 있었지만 다듬지 않은 감정의 분출은 후회가 따르기 쉽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10년동안 잠겼다가 건져올린 언어는 여유롭다. 거친 시대엔 자기 언어에 갇혀 있었지만, 나이를 먹고 스스로 숨고르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말 씀씀이도유연해졌다.
“신문을보니 전아무개라는 사람은/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진압했을 뿐이라 하고/ 노아무개는 기업인들이 성금으로 준 돈을/받아서 좋은 데 썼을 뿐이라고 법정 진술을 했다 한다/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한바탕 하고/ 나는 신문을 접어 두고 차라리 산성일기를 읽었다” 시인은 “세상은 망해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 사랑의 대상은 ‘고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고 ‘그립고 보고 싶은 시’다. 시인은“사랑해”라고 수줍게 말해보고, 그 한마디 말이 꽃피지 못할까 싶어 한숨을 쉰다.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들어와/ 혼자 울겠지”
신경림시인은 10년 전 정씨의 시가 “개인적인삶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까발리지도 않아 몸에 꼭 끼는 옷 같다”고 핀잔을 줬다.
그때는 분노하고 증오할 때만 마음이 움직여 시를 썼다. 정 시인은 이제 자기 얘기를 한다.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도 하고,“발표안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라고도 말한다.
시인은“이제내 시에 쓰인/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시대 상황을 연상치 말라”며 웃음짓는다. ‘봄’과 ‘겨울’을 견고한 시어로 사용했던 사람만이 할 수있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인의 눈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넓어져서 읽는 이의 가슴을 넉넉하게 한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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