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부 민원만 10년 넘게 처리해온 ‘옴부즈맨’이 그 간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모아책을 펴냈다. 주인공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조사관 박동혁(朴東赫ㆍ42)씨.90년 총무처 정부합동민원실 근무를 시작으로 94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창립멤버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최근 ‘황금노파’라는 수필집을 펴냈다.
“어느 날인가 의사의 실수로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고 하소연하는 시골노인이 새벽기차로달려온 적이 있었어요. 법원의 판결이 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인 노인을 따라 직접 병원까지 찾아가 보았죠. 물론 전산코드번호90100로 미결처리됐습니다.”
고충민원은 법률과 일선 행정기관지침의 차이 또는 정책ㆍ예산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국민과 행정기관 사이의 갈등 해결을 요구하는 민원으로 건축허가나 식품업소 허가요구,일조권이나 도시계획으로 인한 권리침해 주장 등이 빈발하는 사례다.
조사관 한 명이 하루에 10여건의 민원을 맡는데 관련 기관 안내만 하면 되는때도 있지만 3~4개월, 때로는 1년이 걸리는 것도 있다. 박씨가 맡고 있는 일은 정부 26개 부처의 파견조사관이 맡은 업무와 같은 특정 부처소관도 아니고 시정, 제도개선 등을 위한 것도 아닌 ‘기타 민원’의 처리다.
“저에게 까지 오는 민원인 대부분은 이런 저런 기관을 다 거치면서 불만이 최고조에달해 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횡설수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포가 서울이 아닌 인천광역시로 편입돼 땅 값이 떨어졌다고 2년 넘게 민원실을찾아왔던 노파도 있었고, 어느 노인은 지역문화원에서 자신의 수석(壽石)을 사주지 않는다고 1년간 억울함을 호소하다 급기야 고충위 사무실에 불을질러버렸다.
서강대 경제학과 78학번으로 평범한 회사원을 꿈꿨던 박씨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은졸업 후 사고로 다리를 다쳤기 때문. 지금도 보조지팡이를 사용하는 그는 한 동안 자포자기 상태로 병원에 갇혀 지내던 중 90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민원실 근무를 자원했다.
“발령 받은 첫 날 청와대 비서실에서 두 박스의 편지함을 가져오더군요. ‘대통령 전상서’로 시작되는 수 많은 편지들을읽고 행정기관에 자료를 요청하면서 부조리의 다양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민원의 홍수 속에서 지내다 보면 타성에 젖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 억울한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늘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친다”는 그는 “이 일에는 지식이나 따뜻한 마음보다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며 말을 맺었다.
박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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