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1세기 세계 경제를 지배할것인가.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 월가에서 이 같은 질문을 하면 상대방이 오히려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것이다.뉴욕의 월가는 말 그대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EU(유럽연합)와 일본의 추격에도 불구, 미국은 현재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비롯해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질주는 어떻게가능한 것일까.
■월가의 화두는 금융 백화점식 합병
월가는 최근 비용 감축에 신경이 곤두 서 있다. 지난해 360억 달러의 합병에 성공한 뒤 인력 중복으로 고민하는 JP 모건체이스는 고객 상담에 너무 많은 직원이 참여한다고지적한 내부 문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골드만 삭스는 비행기 1등석 이용 금지 명령을 내렸고 심지어 직원들의 택시 이용까지 제한했다. 저비용-고수익은월가의 지상명제다. 인력 개편이나 비용 절감 등 수익 구조 개선은 기본이다.
하지만 월가에서 꼽는 최상의 전략은 역시 인수와 합병(M&A)을통한 몸집 불리기다. 금융회사의 유사 업종 겸업을 금지한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1999년 말 폐기된 뒤 이종 금융회사 합병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증권사 도널드슨 러프킨 젠레트가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에 넘어간 것을 시작으로 체이스 맨해튼-JP모건, 와서스타인페렐라사(미국 투자은행)-드레스드너 방크(독일 은행), 데인라우셔사(미국 증권사)-로열 뱅크 오브 아메리카(캐나다 은행)의 인수와 합병이 줄을이었다.
데이비드 코만스키 메릴린치 회장은이렇게 말했다. “작아야 혁신이 가능하고 창의적이고 유연하며, 큰 것은 관료주의적이며 변화에 둔감하다고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변화의 이점을 노린다면, 또 과감한 아이디어로 투자하기를 원한다면 규모가 커야 한다.” 기업의 크기가 혁신만큼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덩치는키우되 중복 사업은 도려내고, 비용 절감을 통해 이윤을 늘려 수익 증가를 주주와 고객에게 돌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대형화는 필수다.
특히이종 회사끼리 합병은 여수신 업무는 물론 증권, 보험을 망라한 금융 백화점식 경영으로 고객 유인을 훨씬 수월케 한다. ‘자산 규모 1,000억달러는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처럼 대형화가 월가의 생존 조건임을 증명하고 있다.
■나스닥과 NYSE도 대형화와 세계화
대형화 추세는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NTSE)도 마찬가지다. 1999년나스닥 저팬을 출범시켜 일본 증시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던 나스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런던-프랑크푸르트 합병 증시(iX)와 제휴했고 최근 런던의파생상품거래소인 런던국제선물옵션거래소(Liffe)와도 손을 잡았다.
NYSE도 이에 질세라 캐나다, 남미 등 해외 9개 증권거래소와 세계주식시장(GEM)을결성, 올 연말까지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150여 개에 이르는 세계 각국 증시가 3년 안에 통합해 거래의 장벽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전자장외거래시스템(ECN)등 온라인 거래의 영향이 크다. 나스닥에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세계의 주식을 거래하는 인스티넷, 아일랜드 등 10여 개 ECN 회사의비중이 30%를 오르내린다.
모건스탠리 딘위터, 메릴린치, 골드만 삭스 등이 동업해 곧 출범시킬 경매 형식의 인터넷 주식 거래인 프리멕스(Primex)도사실상 ECN에 대한 대응이다. 초대형 글로벌 증권 거래소의 등장은 이 대열에 끼지 못하는 군소 거래소에 대한 사망 선고나 다름 없다.
■경쟁력의 핵심은 인력
이런 대형화 추세의 이면에서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늘 고민하는 것은 인력 문제이다. 모건스탠리 딘위터는 올해 초 로이터가 주요 대기업과 펀드 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회사 경쟁력 조사에서 개인 애널리스트10위 안에 자사 분석가들이 5명이나 포함된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겼다.
다른 부문에서도 모건스탠리를 포함한 SSB, CSFB,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이 수위를 차지했다. 미국 경제전문 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올해의 애널리스트 9명도 이 회사들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덩치가 크다는이유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맨해튼 34번가에서 만난 SSB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분석과 예측이 투자은행의 생명”이라며 발군의 애널리스트들을 월가라는 슈퍼 컴퓨터를 움직이는CPU에 비유했다.
월가 경쟁력의 핵심이 사람이라는 것은다른 각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JP 모건 체이스는 합병 이후 중복 인력을 줄이기 위해 5,000명 감원 계획을 세웠다.
골드만 삭스 역시 최근투자은행 부문의 수익 악화로 임원 등을 12% 가량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고탄력 인력 운용이 별로 시비거리가 아니라는점이다.
어느날 아침 업적이 낮아 2주일만 더 근무해주면 좋겠다는 통지서를 책상 위에서 발견하더라도 군소리 않는다. 정말 할 말이 있으면 법정으로가는 것이 월 스트리트의 불문율이다.
뉴욕=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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