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전혀 다른 ‘세계 문학’이 온다. 아예 몰랐거나, 명성은 들어알았지만 작품은 접할 수 없었던 세계 문학의 숨은 걸작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지원하고 문학과지성사가 발간하는 ‘대산 세계문학총서’는 한국근대문학이 발아한 후 1세기동안 우리가 갇혀있던 좁은 세계문학의 틀을 깨는 시리즈다.
셰익스피어에서 출발해 톨스토이와도스토예프스키를 지나 헤밍웨이, 사르트르로 마감됐던 것이 한국의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최근 민음사, 범우사에서 속간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은 그 시기ㆍ작가적범위를 넓히면서 제3세계 작가의 작품까지 포함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 나아가 기본적으로 국내에 이미 소개된 작품은 제외한다는 원칙을세웠다. 한국 번역의 고질적 문제인 중역도 철저히 배제했다.
1차 출간된 작품은 로렌스 스턴의소설 ‘트리스트럼 샌디’(전2권),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 멕시코 소설가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의 ‘페리키요 사르니엔토’(전2권), 기욤 아폴리네르의 첫 시집 ‘알코올’, 미국 흑인 여성 소설가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등 5종 7권.
‘트리스트럼 샌디’는 셰익스피어와 대등한 작가로 평가되면서도 막상 그 작품은 소개되지못했던 로렌스 스턴(1713~1768)의 대작이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라.” 스턴은 이 말처럼 인과관계나 종결을 무시한 지극히자유로운 서술 방식으로, 작가인 주인공 트리스트럼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이라고 웅변한다.
그는 이 소설로 ‘18세기에서20세기로 막바로 뛰어든 현대소설의 대부’로 불리며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해 토마스 만, 니체, 샐먼 루시디,밀란쿤데라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하이네(1797~1856)는 ‘로렐라이’가 일제시대인 1920년 1월 처음 소개된 후 줄곧 사랑 받아온 독일 서정시인. 그러나 그의 대표적 시집인 ‘노래의 책’(1827)은 80년만에야 완역됐다.
역자 김재혁고려대 교수는 “소녀적 감상의 연애시인이라는하이네에 대한 일면적 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사랑 시 틈에 감추어진 사회비판적 요소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유명한 ‘미라보 다리’의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의첫 시집 ‘알코올’도 상세한 주석과 해제를 덧붙여 완역됐다.
1816년 발표된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는 중남미에서 현지 작가에 의해 쓰여진 최초의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멕시코는 이 작품으로 비로소 스페인어를 사용해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국민문학을 가질 수 있었다.
여성이며 동시에흑인이라는 이중의 벽에 직면한 주인공의 파란 많은 삶의 역정을 그린 ‘그들의 눈은…’로 허스턴은 ‘미국 흑인 여성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며 노벨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선구자로자리매김 됐다. 1937년작인 이 소설은 90년대 들어 미국 대학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왜 이런 작품들이 이제야 소개됐을까.허스턴을 번역한 이시영씨의 말이 그 사정을 말해준다. “96년 번역을 마쳤지만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뻔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대산문화재단이 9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외국문학 번역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들로 구성되며, 출판비용의 일부를 재단이 출판사에 지원한다.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상업성이 없거나,길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운명에 놓였던 세계문학이 이 총서로 나오게 된다.
채호기 문학과지성사 사장은 “한국의 세계문학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기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권 분량의 ‘서유기’ 최초완역본, 불가리아 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올려놓은 ‘발칸의 전설’ 등 이미 50여 권이 기획된 총서는 앞으로 매월한 작품 정도가 발간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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