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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 수원 법성사 보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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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 수원 법성사 보현스님

입력
200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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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식성”이라고 스님은 조용히 웃었다. ‘가시고시’, ‘국화꽃 향기’ 처럼 청소년들의 서가에나 어울릴 법한 책이 그의정갈한 방에 있어서만은 아니다. 뉴스는 필수다. 특히 ‘사랑의 리퀘스트’, ‘칭찬합시다’ 같은 TV 프로는 놓치는 법이 없다.수원 법성사(法性寺) 비구니 보현(普現) 스님은 그렇듯 막힘 없는 행보로, 평신도의 벗이 돼 준다.큰 스님 열반 후 실질적 어른인 원주(院主) 스님 일을 맡으면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성불만을 화두로 삼지 않는다.

“트로트든, 샹송이든, 재즈든 마음을열면 길은 보여요.” 108 참회, 독경, 화두정진 등 불가의 전통적 수행법을 통해서도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그는 속가의 음악을 통해 마음을 다독인다.

특히 재즈는 뒷산 광교산 새벽 산행의 운무가 가슴에 젖어 들 때, 그 이상의 벗이 없다. “박성연의 ‘7년만의 외출’ 같은 진솔한 재즈는 세상일에 ‘부대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빈공간을 채워주죠.”

수행자로서 치러야 하는 낯가림에도불구, 재즈는 그의 특별한 휴식처다. 감성적으로야 그런 분위기가좋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먹물 자락”의 신분으로 세인의 눈을 의식하는자신을 때로 발견한다.

그러나 재즈는 속가에서 듣던 유행가(포크송과 트롯)와 샹송에 대한 기억을 문득 들춰내, 한없는즐거움으로 그의 마음을 채운다.

자유로운 사고 덕에, 스님은 특히젊은 신도에게는 인기 있는 조언자이다. 신도들은 애인과의 성격차 등 지극히 세속적인 일을 안고 와 서슴없이 털어 놓는다.

이럴 때, 속가의 책을읽고 속가의 음악을 들었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힘이 된다.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에는’ 같은 노래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생 무상이 짙게 배어 있잖아요.”

법랍(法臘) 22년, 속가의 나이45세. 새벽 3시 예불로 하루를 열고 밤 10시에 눕는 그가 “죽음 앞에서 어느것 하나 놓지 않겠느냐”라고 할 때, 말의 울림은 남다르다.

97년 그는 자신에게 골수이형성증이라는 난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병원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 감기처럼 피로가 자꾸만 누적되는 백혈병의 일종이다.

96년 만행 삼아 친구 스님과 백두산을거쳐 우루무치까지 갔다 오는 ‘실크로드 걸망 여행’ 52일 강행군을 하고 돌아 온 후였다.

의사는 골수를 이식하지 않으면 천수를 보장하지 못 한다며그를 쳐다봤다. 그는 요즘 잦은 피로감 때문에 월 2회 서울에 와서 수혈을 해야 한다.

스님은 “삶이란 곧 호흡지간(呼吸之間)”이라며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병원에 장기를기증하려 했으나, 지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 했다.

그 염원은 시신기증으로 달래야 했다. 불치병 환자를 위한 새빛누리회, 생명나눔의회 회원이기도하다.

문득 뻐꾸기 소리가 다발로 쏟아진다.스님은 “뻐꾸기가 많이 울면 가문다는데…”라며 세상일을 걱정했다.

이미 그는 “병으로 죽었다는 말보다 병을 이겼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자신의 비원에 성큼 다가 서고 있는 지 모른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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