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 인디오 소년이 대통령이 됐다.”3일 실시된 페루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알레한드로 톨레도(55)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자 수도 리마의 ‘페루 가능성’당 대선 대책본부 앞에 모인 수많은 유권자들은 그의 입지전적인인생과 ‘4전 5기’의 신화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1995년 첫 도전에서 좌절을 겪었던 톨레도는 지난해와 올해 대선에서 결선까지 치르는 접전끝에 1821년 페루 독립 이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에 당선됐다.
톨레도의 이름 앞에는 항상 ‘파차쿠티(변혁을 이룬사람)’와 ‘엘 촐로 엑시토스(성공한 혼혈 인디오)’라는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그의 굴곡있는 삶을 상징하는 용어들이다.
톨레도는 1946년 3월 안데스산맥의 인디안 마을에서 아버지가 양치기인 가난한가정의 16남매 중 한명으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닷가 도시로 이사했지만 빈곤한 생활이 여전하자 그는 7살 때부터 구두를 닦으며 번 돈으로 책을 사 주경야독했다.
끝없는 향학열로 페루의 산프란시스코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한 신문사의 지방주재 기자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결국 장학금을 받아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시절 그는 중남미원주민 문화를 연구하던 인류학자인 벨기에 출신의 유대인 백인 여성 엘리안 카프(47)와 결혼했으며, 이후 교환교수 자격으로 하버드대에서 연구활동을하다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정치노선은 인본적 자본주의 원칙을 중시하는 ‘온건 보수’성향이라는 평을 받는다.
톨레도는 지난해 4월 대선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의 결선투표를 부정선거를 이유로 거부,결국 후지모리가 야당의원 매수사건으로 하야한 ‘민중혁명’을 촉발시켰다.
때문에 이번 선거 초반만 해도 압승이 유력했던 그는 투표 직전 사생아 시비와코카인 복용 전력 등 흑색선전으로 지지율이 급락,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의 95%를 차지하면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해온 인디오들이 ‘잉카 제국의 영광 재현’을 기대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덕분에 그는 막판 추격전을 벌인 알란 가르시아후보를 따돌리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톨레도의 페루 앞날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가 승리함에 따라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하야 후 1년여 동안 계속됐던 페루의혼란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톨레도는 3일 당선 일성으로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빈곤 추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페루 경제는1998년부터 악화하기 시작해 최근 정국위기까지 겹치면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일단 경제 회복을 국정의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그리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전문가들은 경제학자로서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실무경험부족과 정부장악 능력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를전폭적으로 지지한 가난한 인디오들의 봇물처럼 쏟아질 요구를 어떻게 충족하느냐도 과제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후지모리와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전 국가정보부장의 지지자들이 남아 있는 군ㆍ경 및 정치권의인사들과 이들이 자행한 부정 부패를 어떻게 척결하느냐이다.
톨레도는 일본에 망명한 후지모리 등에 대해 사법처리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외교협상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그가 이끄는 ‘페루가능성’ 당은 의회의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어 기득권 세력이 그의 개혁 정책을 사사건건 방해할 가능성도 높다. 이와 함께선거 막판 제기된 코카인 복용과 선거운동자금 유용 등 각종 의혹도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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