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대부분일부일처제의 번식구조를 가지고있다. 갈매기가 그렇고원앙이 그렇듯이 암수가함께 새끼를 키운다.알이수정되자마자 몸밖으로 내놓기때문에 암컷이 수정란을 일정 기간 몸속에 끼고 키우는포유동물들과 달리 아내와남편이 공평하게 자녀양육에 참여할 수 있다.
둥지안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알들을 내려다보며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라고 알을품지 못한다는 법이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래서 새들의 세계에는 일부다처제가 드물다.
하지만 뜻밖에도 일처다부제는 줄잡아 20여 종의새들에서 관찰되었다. 얼마 전우리나라 중부지방 어느습지에서 관찰된 호사도요도 그 중의 하나다.
도요새들 중에는 재미있는 번식구조를 가진 새들이 또있다. 북유럽에 서식하는 점박이도요는 렉(lek)이라는 기상천외한 짝짓기제도를 갖고 있다.
해마다 번식기가 되면 조상대대로 모여들던 곳에수컷들이 먼저 날아와제가끔 춤을 출수 있는 공간을확보한 후 초조하게 암컷들을 기다린다.
드디어 암컷들이 나타나면 렉은 광란의도가니로 변한다. 수컷들은 모두자기 앞에 나타난암컷에게 잘 보이기위해 온갖 기이한몸짓과 괴성을 동원하여 교태를 부린다.
암컷들은 이수컷 저 수컷의공연을 감상한 후마음에 드는 수컷과짤막한 정사를 나눈후 훌쩍 날아가자식은 혼자 키운다. 암수가 뒤바뀐 미스코리아 대회를연상해보면 된다.
호사도요는 1887년 러시아 생물학자가 서울근교에서 암컷 한마리를 채집한 것을끝으로 우리 산야에서 자취를 감춘 줄알았는데 이번에 그기막힌 자태를 드러낸것이다.
막상 서식하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보도되자 다른 지역에도 살고 있는 것을목격했다는 독자들의 제보들이 뒤를 이었다. 호사도요는 참귀한 새다.
수적으로 귀할뿐만 아니라 사는방식도 참으로 별나다. 이세상 대부분의 동물들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화려한것이 통례인데 호사도요는 암컷의 깃털이 훨씬더 화려하다.
호사도요 수컷은다른 많은 새들의암컷이 그렇듯이 둥지색깔과 그리 다르지않은 갈색 깃털로뒤덮여 있는 반면, 암컷은 붉은 색, 검은 색, 흰색의 깃털로 장식된 세련된가슴을 자랑한다.
이른바 일처다부제의 번식구조를 가지고 있는자연계에 몇 안되는 동물들 중의하나다.
다른 종들에서 종종 수컷들이 하듯호사도요 암컷은 자기만의 영역을 보호하며 그영역 안에 둥지를튼 여러 수컷들에게 따로따로 알을 낳아주고 키울 수 있도록배려한다.
이렇게 흥미로운 새가 우리나라에 살고있었다니 다시 한번생명의 끈질김에 머리가숙여진다. 어느 곳하나 성한 곳이없는 만신창이 금수강산에 어떻게 여태 그고운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느냐.
아주 어렸을 때나는 금붕어가 사람들이 일부러 물감을 들인물고기인 줄 알았었다. 시골개울에서 잡는 물고기들은 거의 한결같이 희끄무레한 색을 띄고 있었기때문에 금붕어는 필경이 세상 물고기가 아니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각시붕어였나 보다.어느 날 예쁜색동옷으로 갈아입은 그고운 고기 한마리를 개울에서 건져내 손안에 쥐기전까지는 물 속에그런 색들이 헤엄치고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못했다. 사진으로 보는호사도요지만 너무나 고와보인다.
하지만 그고운 색깔을 신문에서 보는 순간 반가움은 잠시일 뿐 걱정이앞섰다. 발견된 지역이름을 밝힌 활자가너무나 크게 보였다.
이제곧 누군가가 저들을잡으러 갈 것같은 불안함에 치가떨렸다. 해치려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을 보겠다고 떼거지로 몰려가는 날이면그 새들은 어쩌면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를 포기해야 할 지도모른다.
일요일 아침에보면 젊은 여성리포터가 인적이 드문오지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워낙좁은 땅덩어리에 갈곳이 마땅치 않은우리들에게 깨끗한 자연과접할 수 있는곳을 알려주는 일은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볼때마다 “아, 또 한청정지역이 사라지는구나” 하는 탄식이내 입에서 절로터져 나온다.
원로 수필가장돈식님은 그가 최근에펴낸 수필집 ‘빈 산엔노랑꽃’에서 크낙새를 발견하곤 새를 연구하는 대학교수 연구실의 전화번호를 뒤적이다 수화기를 놓고만 얘기를 적고있다.
새 편을들기로 한 것이다. 학계는 천하를 얻은 듯날뛰겠지만 그 통에크낙새의 운명은 또다시 바람 앞에촛불 신세를 못면하리라는 생각에 그는그 누구의 눈에도띄기 전에 어린것들이 어서 자라 더깊은 숲 속으로날아가기만 가슴 졸이며빌었다 한다.
나도 몇년 전 자연생태조사를 하던 중 참으로반갑게도 반딧불이를 발견한적이 있다. 그 지역에서 반딧불이가 관찰된 지너무도 오랜 터라밤새도록 그들의 군무를올려다보며 즐거워했다.
칠흑같이 어두운밤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색불빛을 반짝이는 그들이너무도 소중했기에 나역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학자로서 할 일이아닌 줄은 알았지만 학문도 그들이 살고난 후에야 할수 있는 일이라생각하고 마음의 눈을슬며시 감아버렸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