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너를 다시 살려냈구나.”생사도 모른채 30년을 헤어져 살았던 두 형제가 인터넷을 통해 다시 만났다. 최근 인터넷 사람찾기 사이트에서 이름 석자를 확인하고 인터넷 DNA감식업체에서 ‘부유전자 일치’ 판정을 받은 이정운(李政雲ㆍ40ㆍ건설업ㆍ경기 안양시 비산동)ㆍ관석(寬碩ㆍ36ㆍ자영업ㆍ서울강서구 화곡동)씨.
“단 하루도 너를 생각지 않은 날이 없었다. 찢어지는 가난과 아버지의 잦은 매질을 견디게 해준 건, 언젠가는 나타날 네 앞에 떳떳이 서야 한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동생 관석씨가 실종된 건 1972년 여름. 아버지의 술 심부름을다녀온 관석씨가 거스름돈을 받아오지 않았다며 호되게 혼나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술에 찌들어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와 6명의배다른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불우하게 자란 정운씨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만 간직할 뿐 차마 동생을 찾아 나설 수 없었다.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가난의 무게에 짓눌려 왔던거죠.”
서울 은평구 ‘소년의 집’에서 자란 관석씨에겐 ‘안양, 무서운 아버지, 친절한 사촌형’이라는 3개의 희미한 기억뿐이었다. 형을 찾은 뒤에야 기억 속의 사촌형이 친형인 정운씨 였다는 것과 자신의 원래 이름이‘권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무 기억도 남지 않았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마음 편히 살았겠죠. 절절한 그리움에 기억을 되살려보려다 머리가 깨질듯 아파 혼자 울곤 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관석씨의 얼굴을 정운씨가 말없이 쓰다듬는다.
한달여전 한 인터넷 사람찾기 사이트에서 ‘이권석, 30년전 안양에서 실종’이라는 사연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관석씨는 글을 올린 정운씨에게 즉각 이메일을 보냈다.
1주일 뒤 직접 만나 꼭 닮은 입매와 얼굴형등을 확인하고 형제임을 직감했지만 아직 믿기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DNA 정보업체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 ‘부계 및 모계 100% 일치’판정을받고서야 두 형제는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두 형제는 만날 때마다 “관석아” “예, 정운이형”하고 수백번씩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30년동안 ‘못 부르고 못 들은 한’을 풀기 위해서다.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두 시간을 꼬박 이름만 부르다 헤어진 적도 있습니다”라는 관석씨는 “명절 때면 친척이 없어 쓸쓸해하던 두 딸(13, 10살)에게 살가운 사촌이 생긴 게 가장 뿌듯합니다”라며밝게 웃는다. 두 형제는 “긴긴 세월 아픔이 크고 깊었던 만큼 더욱더 사랑하고 아끼며 살겠습니다”며 두 손을 꽉 잡았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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