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는 강력한 억불정책으로 불교미술이 위축된 시기로 알려져 있지만,16세기는 왕실에 의해 불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였다.현재 남아있는 조선 전기 불화 120여점 중 90여점이 16세기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최근 화제의 드라마 SBS ‘여인천하’에서 전인화의 열연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는 문정왕후(文定王后ㆍ1501~1565)가 있었다.
5월 25~26일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서 김정희 원광대 교수는 ‘문정왕후의중흥불사와 16세기 왕실발원 불화’라는 논문에서 “16세기는 문정왕후의 불교중흥 정책에 힙입어 수준높은 불화가 창출되는 등 궁중양식(宮中樣式) 미술이 활짝 꽃을 피운 시기”라는주장을 제기해 관심을 모았다.
불심이 깊었던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즉위하면서 정권을 잡게 되자 보우(普雨ㆍ?~1565) 대사와 함께 20여년동안불교중흥책을 추진했다.
유학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교 양종을 복원해 395개의 사찰을 국가 공인 사찰로 지정했으며 승과(僧科)와 도첩제(度牒制ㆍ승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관청에서 인가하는 제도)를 부활시켰다.
김교수는 “이런 정책에 힙입어문정왕후가 발원한 불화만 600여 점이 넘게 그려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불화의 상당수는 개인적 기원화(祈願畵)의 성격을 띤 순금화(純金畵)로 제작됐는데 이는 예배 목적의 거대한 후불탱화(불상뒤에 있는 모셔진 불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문정왕후는 몸이 허약했던 아들 명종의 건강을 위해 기원화를 제작했다고 전한다. 명나라에서 전해진 불화양식의 영향과 조선 산수화의 특징을 반영한 독특한 궁중양식의 불화가 성립됐다는 것이다. 재원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내수사(內需寺)를 통해 마련됐다.
김교수는 “문정왕후가 죽은후 보우대사가 요승으로 몰리고 불교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불교미술도 위축됐지만 퇴계와 율곡이 등장하며 유학이 전성기를 누린 16세기에 문정왕후에 의해 잠깐이나마 불교미술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