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개혁의 후퇴’라는 내외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재벌 규제완화 조치를 강행함으로써 개혁정책 전반에 걸쳐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게 됐다.가령 최근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는 노동계의 하계 투쟁을 비롯한 노사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가 노동계에 어떤 명분으로 자제와 화합을 촉구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요컨대 이번에 재벌 규제완화 조치는 대기업 정책에서 뿐만 아니라 노사 공공 등 사회 경제 각 부문의 개혁 일정과 이행에 상당히 부정적인 파장과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을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권이 개혁에 대한 최소한의 초심을 갖고 있다면 이 같은 위험성을 조금도 간과ㆍ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집권 이래 그나마 쌓아온 개혁 성과와 기반이 연쇄 붕괴하는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정부가 이번 규제완화 조치와 함께 내놓은 ‘경영 투명성 개선대책’의 실천 여부는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대다.
정부는 이번 재계에 34개 항의 규제완화 조치를 선사하면서 한편으론 집단소송제의 단계 도입, 결합재무제표의 공표 의무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방안 마련 등 11개 항의 투명성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야말로 ‘대책과 방안’이지 재계에 안긴 규제완화와 같은 ‘가시적 조치’가 아님을 우리는 주목한다.
내각의 조율, 정치권의 당리당략 장벽을 넘어 법령의 제ㆍ개정과 제도 도입이 이뤄져야 비로소 실행이 가능해지는 난제인 것이다.
이 중 대부분이 진작에 정부가 추진방침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지지부진하거나 무산됐던 것들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정권이 임기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서 이러한 개혁안들이 얼마나 성사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투명성 대책이 규제완화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여론 무마용으로 내놓은 공허한 말장난이라는 극단적 시각마저 있음을 정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차제에 각 부문에 걸쳐 개혁의 고삐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부 등 공공부문에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번 재벌정책 완화를 기화로 개혁의 레임덕 현상이 벌어지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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