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바르던 분 내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유방암으로 시한부생을 살고 있는 한국계 혼혈 여성 쉐릴 피셔 콸스(Cheryl Fisher-Quarlesㆍ50ㆍ한국명 이순이)씨가 엄마를 찾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왔다.
피셔 콸스씨가 43년 만에 그리운 고국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6년 전이다.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받던 중 불현듯 떠오른 기억 때문이다. “아련히 떠오르는 동네 정경과 산나물이 가득했던 언덕배기, 외할아버지 머리맡에서 듣던 라디오 소리. 꿈 속의 풍경이 이제 보니 모두 사실이었네요.”
수술을 마친 뒤‘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짐을 꾸린게 99년 7월이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기억의 파편을 더듬었지만 해체되는 중앙청 건물과 경복궁 말고는 남아있는 게 없었다.
게다가 미국으로 입양된 뒤 한국어마저 잊어 도움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사람들, 음식들, 이 냄새들…. 내가 살던 곳이구나. 엄마도 이곳 어딘가에 있겠지.’ 안타까움만 키운 첫 방문이었다.
심장을 때리는그리움의 물살을 막을 길이 있으랴. 가끔씩 온몸을 뒤흔드는 통증과 치료약 때문에 생기는 발열을 참으며 지난 5월16일 두번째 모국방문을 했다.하지만 엄마 이름도 기억 못하는 자신이 답답할 뿐이다.
“간신히 입양기관을 수소문해 몇가지 서류를 찾았지만 식구들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었어요. 사과를 깎아주던 할아버지의 희미한 모습과 가끔 찾아오던 아버지의 군복만 떠오를 뿐이죠.”
피셔 콸스씨는58년 서울 명동의 개성학교 안에 있는 고아원에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녀는 “가정형편이 유복한편이었고 살던 곳은 경복궁 부근의 실개천이 흐르던 외갓집이었어요. 가끔 엄마가 살던 집에 찾아가기도 했는데 어느순간 입양기관에 남겨졌다”고 회고했다.
오는 5일 출국하는 피셔 콸스씨는 몸이나아지는 대로 다시 엄마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엄마의 향기가 머리 속에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숨이 붙어 있는 한 인연의 끈을 찾아나설 겁니다.”
가쁜 숨을 가누며영어로 대답하는 그녀의 엄마를 향한 ‘치사랑’은 ‘내리사랑’못지 않았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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