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탄핵 절차가 시작된 뒤에도 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여전히 오만한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31일 오전수도 자카르타 모나스 광장에는 다시 5,000명 이상의 군중이 모여들어 ‘와히드 만세’를 외쳤다.이에 앞서 새벽 대통령관저에서 지지자 대표를 접견한 와히드는 “이번주내에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군과 각료들도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현지 방송이 전했다.그는 이날 군중앞에 직접 나타나 의회에 맞서 대통령직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국민협의회(MPR) 특별 총회 소집후 탄핵이 결정될 때까지 남은 기간은 2개월여. 시간을 멈춰세우기 위해 와히드에게 남겨진 유일한수단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뿐이다.
하지만 전날밤 수실로 요도요노 보안부 장관 주재하에 긴급 회의를 가진 각료ㆍ군부ㆍ경찰은 와히드에게 재차 비상사태선포에 대한 반대입장을 정리해 제동을 걸었다.
고립무원에 빠진 듯한 와히드. 그럼에도 그가 엄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소요사태의 악화가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대학 정치학과의 부디야트나교수는 “와히드는 처음부터 비상사태 선포에만 매달려 왔고, 앞으로도 포기하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탄핵은 유혈사태, 심지어는 내전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강경자세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에 대해권력분점안 등 타협안을 받아들이든지, 파국을 맞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벼랑끝 전술’로 해석된다.
여기에다 와히드는 법질서회복 포고령을 이용, 정적 및 언론인들에 대한 체포와 함께 의회를 해산할 뜻을 시사하고 있다. 자신이 탄핵될경우 “인도네시아에서 최소한 6개 주가 분리돼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명분과 대세를 모두 잃은 와히드의 버티기가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반대세력의 약점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데다 10%에도 못미치는 의석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와히드의 노련한 정치력은끝까지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인도네시아의 2,000여개 도서가 정권교체의 큰 흐름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격류의 중심에 있는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부통령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대한 탄핵움직임이 시작된 뒤 줄곧 선봉에 서왔다. 30일 의회총회를 앞두고는 자신이이끌고 있는 최대 의석 인도네시아민주투쟁당에게 강경자세를 주문했다.
마침내 대통령 승계의 1순위인 데다,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메가와티의 눈 앞에고지가 다가온 느낌이다.
그러나 메가와티는 선뜻 대권 거머쥐기에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위기다. 종교적 한계, 반와히드 연합세력의 불안한 공조 등 발목을잡고 있는 요인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와히드의 아버지는 메가와티의 아버지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협력자이었고, 두 사람도 서로를 오누이로부르며 친분을 나눠왔다. 하지만 문제는 ‘옛정’ 만이 아니다.
메가와티는 2년전 대선에서도 이슬람교도가 아니고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다.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반와히드세력내 이슬람정파는 바로 대선때 ‘여성 지도자는 교리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가로막았던 세력이다.
와히드 지지기반인 나들라툴 울라마(NU)회원은 메가와티가 이끄는 민주투쟁당내부에도 있다. 국민협의회(MPR) 소집을 위한 당 회의에서도 30%에 이르는 의원들이 와히드의 타협안을 수용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일각에서는메가와티가 탄핵을 강행할 경우 당이 분열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설사 메가와티가 권력을 쥐더라도 이슬람세력의 협조를 얻기 위해 와히드의 도움을필요로 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메가와티는 조심스럽게 추이를 지켜보며 사태가 결정적으로 유리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메가와티가 와히드와 정면대결을 계속하기보다는 종국에는 타협할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가 많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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