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을 저지른 여자도 피해자인 남편도 끝은 파멸 뿐이었다. 헝가리 여성감독 크리스치나 딕의 ‘야드비가의 베개’(Jadviga’s Pillow)는 그 속을 헤집어 상처와 연민을 캐내는 영화다.온두리스(빅토르 보도)가 다뉴브 강의 자욱한 물안개 속을 친구들과 지나오면서 술에 취해 잔뜩 결혼에 대한 기대의 노래를 부를 때부터, 비극은 1차대전의 전운처럼 시작됐다.
청년 온두리스는 야드비가(일디코 토트)를 아내로 맞았지만, 아내는 잠자리를 거부하고 급기야 자신이 처녀가 아님을 밝힌다.
여자는 끝없이 첫 사랑이었던 변호사 프란시(로만 루크나르)와 밀회를 계속하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내를 포기하지 못하는 순진한 청년 온두리스는 절망한다.
’야드비가의 베개’는 남자의 바보스러울 정도로 변하지 않은 순정과 가증스러울 정도로 뻔뻔한 여자의 불륜과 거짓말을, 1차대전 전후의 헝가리 작은 마을의 현실과 인간들의 관계 속에서 끈질기게 반복한다. 아이를 낳자마자 프란시에게 달려가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매달리는 야드비가.
감독은 그런 여자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온두리스가 동포인 리투아니아족 분리운동을 하는 친구를 경찰에 밀고해야 하는 그 ‘배신의 계절’을 누군들 상처없이 지나갈 수 있으랴. 온두리스와 야드비가의 출생 배경이 그렇고, 누군가를 배신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그렇다.
야드비가를 향한 감독의 시선은 그래서 더욱 너그럽고 영화는 따뜻한 페미니즘의 향기까지 내뿜는다. 그러나 남성들은 너무나 이기적인 그 시선에 울화가 치밀지도 모른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아내와 친구를 배신한 자신에 대한 절망과 죄의식으로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죽는 온두리스를 보면.
사랑을 위해 정말 목숨을 걸 수 있는 쪽은 남자인지 모른다. 팔 자바다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지난해 살레르노 국제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다. 2일 국내 개봉.
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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