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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연한 시민상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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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연한 시민상대 실험

입력
2001.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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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남산 3호 터널을 지나는데 쪽지 하나를 주길래 무슨 내용인가 보았더니 내일과 모레 이틀간 수도권 전역에서 ‘자율적 자동차 짝홀제’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월드컵 개최를 1년 앞둔 이 시점에서 수도권의 교통과 환경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게 하기 위해 실시한다고 되어 있었다.

내일 당장도 아니고 월드컵 개최를 1년이나 남겨둔 이 시점에서 자동차 짝홀제를 자율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동안 10부제니 홀짝제니 하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짝홀제라는 말은 다소 생소하다. 그렇지만 홀짝이나 짝홀이나 그게 그것 아니겠는가.

절반에 가까운 숫자의 자동차 운행을 강제로 막겠다는 것이 홀짝제이다. 강제로 타고 다니지 못하게 하니 당장 운행하는 자동차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것을 두고 교통정책이나 혹은 환경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인 듯 하다.

무릇 정책의 요체는 가능한 한 사회비용을 최소로 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다. 10부제나 홀짝제의 사회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사람들이 모두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을 하려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이를 강제로 막으니 사회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걸어다니라는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승용차를 선택한 사람들은 운행비용이나 시간비용등 모든 비용을 따져본 후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싸기 때문에 승용차를 선택한 것이다.

다른 수송수단을 강요하면 비용이 증가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사회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찌 홀짝제뿐이겠는가.

생일날이나 환갑날에만 차를 운행할 수 있게 하는 ‘생일제’나 ‘환갑제’를 실시하여 교통혼잡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월드컵이 1년이나 남았는데 이틀간만 실시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홀짝제를 실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실험해 보자는 뜻인가.

경제원론 수업시간에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 다른 점은 사회를 대상으로 직접 실험할 수 없다는데 있다고 강의해 왔다.

하도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화하다 보니 사회과학의 본질적 한계도 어느새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이틀동안 홀짝제를 실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누어준 쪽지에 나타난 것처럼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가.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앞으로 이틀동안 승용차를 두고 걸어서라도 출근할 용의가 있다.

홀짝제는 일종의 특단의 조치이다. 월드컵 기간중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홀짝제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다면 애국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할 의사가 있다.

특단의 조치란 남발해서도 안되고 실험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조치라는 것이다. 고통이 극심할 때 마약을 한번 쓸 수는 있지만 자주 쓰면 중독이 되어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자율적으로 실시한다는데 무슨 쓸데 없는 이야기인가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말로는 자율적인데 보도된 바에 의하면 위반차량에 대해 소위 계도도 하고 사진촬영도 할 것이라 한다.

권위주의 정부시절 1주일간 소위 ‘신임교수연찬회’에 강제로 참석했던 일이 생각난다. 마지막날 강사가 자발적으로 연찬에 참석하여 운운하며 호도하는데 분기탱천하여 앙앙불락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인가. 누가 알아주든 말든 맡은 바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하는 국민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데 뻔한 것을 가지고 자율적 운운하며 공연히 열받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서 승환·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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