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각지를 여행하고 있으면 각 지방마다의 지방색을 많이 느끼게 된다. 잘 못 알아 듣는 방언, 고장 음식, 자연 환경, 지역감정 등등.이에 반해 지방색이 있을 법한데도 거의 등질(等質)인 것도 많다. 알고 보면 원래 같은 것이 아니었지만 잊어버렸거나 없어졌거나, 외부로 표출되지 않은 것도 많다.
지역 축제는 그 대표적인 예다. 1990년대 이후 문화관광부의 방침으로 지역 축제들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들은 나름대로 각고장의 정체성과 연관시킨 것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돈벌이의 수단으로서 사용될 뿐 축제의 핵심에는 그 지방의 정체성이 반영돼 있지 않다.
따라서 축제 내용들은 아주 획일적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농악을 보고, 이름만 바꾼 ‘ㅇㅇ 아가씨 선발대회’ 를 봐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농악의 경우 원래 그 고장에 전해져 온 농악이 아니라 축제를 하기 위해 전국 ‘표준모델’ 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들을 보면 식상할 수밖에 없다. 부산에 가도, 강릉에 가도 같은 전주 비빔밥만 먹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사람을 신나게 하기 위한 축제인데도 신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행사 속에서 자치 단체의 문화정책에 대한 안이한 마인드를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5,000년의 역사가 있고, 땅덩어리도 결코 좁지 않은 이 나라에는 과연 시ㆍ 군마다 색깔이 다른 축제를 벌일 수 없을 만큼 지방색이 없는 것일까.
나는 석사 과정때 경기 포천군의 마을축제에 가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읍, 면, 자연 취락 단위로 특색 있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른 시ㆍ군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도 강릉단오제나 밀양 백중놀이 등은 전통적 방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축제들이다. 없는 게 아니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도 오랜 축제가 있긴 있다. 대표적 것은 구룡산의 남이장군 대제인데 조선시대부터 이어 온 남이(南怡)장군을 기리는 행렬이 새마을 운동 때 미신 추방으로 중단됐다가 주민 열의로 되살아났다.
독일의 맥주, 일본의 사케처럼 한국 술에도 지방마다 특색이 있을 것이다. 지방을 다니면 거의 읍면마다 양조장이 있고, 독자 상표의 막걸리를 내고 있는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포천 막걸리나 안동 소주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술은 드물고,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술이 다양하지 못한 나라’라는 인상을 준다.
음식도 전주 비빔밥이나 광주 콩나물국밥과 같은 수준을 넘어 동네마다, 종가마다 독자적 음식이 있다고 말은 들었지만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다.
지방색 나는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살리지 않고 획일적인 것만 계속 보여주려 한다면 한국 여행자들은 곧 식상하고 말 것이다.
도도로키 히로시ㆍ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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