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 이렇게 호흡을 맞추며 삶을 같이 한 지도 어언 16년이 되었네요. 지금은 말없이 서로 눈빛만 보아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 수 있지만, 결혼 초에는 서로 다른 성격과 문화 차이로 인하여 수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지요.당신은 그런 것들을 우리 두 사람의 일치 운동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였지만, 나는 왠지 섭섭한 마음에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곤 했었지요. 당신은 그런 나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그래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야지”하면서 나의 머리를 당신 품에 꼬옥 안아주며 토닥거려 주었죠.
결혼 전 당신이 나에게 무담보 대출신청을 한다며 6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이 결혼하자는 말로 들려 오히려 당신에게 대답할 시간을 한 달만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지요.
그 때 나는 배고플 때 호떡, 붕어빵, 라면 같은 것들을 먹으며 어린이놀이터에서 데이트하는 것을 낭만적이라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결혼생활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같은 생각에 당신과의 결혼이 왠지 망설여지더군요.
그 한 달동안 나는 당신이 데이트할 때마다 서점에 들러 사주었던 작은 책들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죠. 그 속에서 사랑은 자기가 길들인 것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것과, 가짜도 누군가가 진실로 오래오래 사랑해주면 진짜가 된다는 이야기에 감동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진짜가 되고 싶어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당신에게로 달려갔었죠.
하지만 당신에게 진짜가 된다는 것은 훌륭한 도예가가 되는 길만큼이나 힘든 일이었지요. 소유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당신은 욕심 많은 내가 내일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려고 할 때면 항상 이런 말을 했지요.
“산에는 물이 귀하고 큰 도시의 사람 수보다 훨씬 많은 나무와 풀벌레, 그리고 짐승들이 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내일을 위해 물을 비축하지 않아도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지 않느냐.”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년이 가고 십년이 흐르는 사이 나는 어느새 당신에게 진짜가 되어 있었어요. 왜냐하면 결혼 초에는 당신에게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이제서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지난 겨울 우리가 히말라야로 떠날 무렵 당신의 많은 선ㆍ후배와 친구들이 나누어준 진실되고 따뜻한 우정과 사랑은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참으로 하나의 기적이었어요, 영하 30도의 추위와 무서운 바람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밟으며 안나푸르나 어깨를 넘어 도달한 해탈의 땅 묵티나트에서 그 수직물의 강렬한 티베트 컬러 한 올 한 올에 친구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새겨보며 우리는 무척이나 행복했지요.
대니, 당신은 우리가 힘든 현실과 부딪칠 때면 인간이 걸어가는 길 저 편에는 하나의 안나푸르나가 있다고 했죠. 우리, 마음을 다해 오르기로 해요.
당신의 반쪽 젬마가.
金美順 제16회(1998년)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최우수상 수상자
*젬마와 대니는 김씨와 남편 지동암(池東岩)씨의 영세명이다. 이들은 자연 속의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며 서울 불광동 북한산 자락에서 코피숍 ‘마운틴’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해 수필집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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