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제임스 제퍼즈 상원의원(버몬트주)의 탈당 이후 자중지란에 빠졌다. 그의 탈당은 당 보수진영의 이념 논쟁이 심각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조지 W 부시 정권의 극우적 성향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의원들은 제퍼즈 의원의 ‘거사’ 에 대한 원인을 놓고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그의 움직임을 사전에 간파하지 못한 트렌트 로트 상원 원내총무과 백악관에게까지 화살을 돌리는 등 당내 불화와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내 대표적 진보파인 존 맥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주)은 “온건파에 속하는 제퍼즈 의원이 탈당한 것은 공화당이 온건ㆍ진보주의자를 포용할 수 없을 만큼 이념적으로 극우에 편향됐다는 것을 보여준 것” 이라고 당 노선을 정면 비판했다.
이념에 대한 괴리감을 심각히 느낄 만큼 부시 대통령의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 는 구두선에 불과했다는 게 비판론자들의 시각이다.
실제 제퍼즈 의원은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에 반대표를 던진 이후 백악관과 동료 의원들로부터 ‘집단 따돌림’ 을 당한 것은 물론, 신체적 위협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버몬트 지역 교사들을 초청한 백악관 로즈 가든 행사에 부시 대통령은 이 지역구 의원인 제퍼즈 의원을 초청조차 하지 않았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감세안 표결 후 버몬트주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과 기자들에게 “그가 부시를 지지토록 해야 한다” 는 ‘압력성’ 전화까지 했다.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공화당ㆍ펜실베이니아주)은 “당내에서 온건주의자로 남는 것은 어려우며 솔직히 말하면 험난하다” 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크리스토퍼 셰이스(코네티컷주) 의원은 “제퍼즈 의원은 좋은 친구지만, 동료 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다” 며 동정론을 폈다.
오로지 ‘양심과 신념’ 에 따라 표를 던져야 하는 의원 신분임에도 불구, 이 같은 이념적 강압 분위기가 제퍼즈 의원을 야당으로 내몰았다는 게 중론이다.
탈당까지 결심한 소속 의원들의 움직임을 사전 감지하지 못한 당 지휘부의 ‘불감증’도 도마에 올랐다. 부시 대통령은 제퍼즈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하기 불과 이틀전인 22일에야 이상기류를 보고받고 허겁지겁 무마용 ‘백악관 회동’ 을 가졌으나 때 늦은 뒤였다.
로트 원내총무 책임론도 급부상했다. 당 관계자들은 “공화당의 노선이 점점 보수화하면서 온건론자들과 진보성향 의원들의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 며 당 노선에 대한 재검토부터 해야 한다는 자성론을 제기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충격속에 민주당내 보수주의자인 젤 밀러 상원의원(조지아주)을 영입하려는 반격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맥케인 의원 등 제 2의 ‘제퍼즈’ 가 나오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美 '의원 당적이탈' 판도변화 사례
미국 상원의 판도가 의원의 당적 이탈로 바뀐 사례는 역사상 두 번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사례들은 무소속의 향배와 의회 규정 등 복잡한 요인이 얽혀 있어 이번처럼 상원의 지배력이 완전히 다른 당으로 넘어가는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 1953~54년의 제 83회기로 의석 분포가 공화 48석, 민주 47석, 무소속 1석으로 돼 있다가 공화당 원내총무가 사망한 뒤 민주당 소속인 출신지 주지사가 후임자 지명권을 행사해 양당의 의석이 같아졌으나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이 상원의장으로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제 83회기는 의석 분포가 거의 대등한 가운데 회기 도중 모두 9명의 의원이 사망하고 한 명이 사퇴하면서 다수당 자리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를 오락가락 했으나 당시의 상원 규정에 따라 공화당이 계속 운영권을 장악했다.
1881년~82년 제 47회기는 공화 37석, 민주 37석, 무소속 2석으로 역시 공화당 소속인 상원의장의 `캐스팅 보트'로 공화당이 다수당 행세를 했으나 당 내분으로 공화당 의원 2명이 의원직을 사임하는 바람에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다.
/워싱턴=연합
■다수당 원내총무 톰 대슐
제임스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으로 톰 대슐 (53ㆍ민주ㆍ사우스 다코타주) 의원은 4개월만에 다수당 원내총무로 복귀, 다시 미 상원의 운영을 주도하게 됐다.
사우스 다코타주 에버딘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대슐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출신배경에서 미 의회정치의 정상까지 올라선 점이 현 공화당 중진들과 대비가 된다.
1969년 사우스 다코타 주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78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86년에는 상원에 진출해 94년 원내총무에 선출되면서 민주당의 떠오르는 스타로 부각됐다.
발로 뛰면서 유권자와의 격의를 좁혀온게 전통적으로 공화당 표밭인 사우스 다코타에서 장수를 누린 비결.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상원 재장악을 위해 꾸준히 제퍼즈, 링컨 채피, 존 매케인 의원 등 공화당 온건파와 접촉하며 교감을 넓혔다.
이 때문에 여대야소 상황에서도 민주당 발의 법안에 대한 동조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제퍼즈 의원에 대해선 탈당설이 제기되자 마자 상임위원장직을 제의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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