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오직 성에만 집착하거나 변태적 성을 다루는 것은 천박한 에로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강박관념이다.그래서 그 일탈된 성에의 집착에 정치성이나 이데올로기를 부여하는 것 또한 강박관념이다. ‘썸머타임’(감독 박재호)은 어느쪽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단순히 반복하면서 그 섹스에 시대적 의미와 상황을 결부시키려는 어색한 몸짓.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가져온 상처와 그로 인한 일탈된 인간들의 모습을 섹스와 결부시킨 ‘썸머타임’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검거를 피해 목조 이층집에 들어온 수배 학생 상호(류수영)와 아랫층에 사는 희란(김지현)의 불륜. 어느날 우연히 구멍 난 바닥으로 훔쳐본 여자의 육체, 그녀와 남편과의 섹스장면으로 인해 둘은 육체의 탐닉에 빠진다. 카메라 역시 그것을 담아내는데 빠진다.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80년 광주의 아픔을 조금씩 집어넣었다. 희란은 아버지가 제자들의 시위에 연루돼 행방불명됐고, 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여고생이었던 희란을 겁탈하고는 지금의 남편이 됐다.
그리고 그 남편은 억울하게 파면당해 공장 경비원으로 전락했다. 아내가 도망칠까 두려운 나머지 늘 밖에서 문을 잠그고 출근하는 사내.
문제는 그것이 두 사람의 열정적인 섹스탐닉과 어떤 알레고리를 갖지 못한데 있다. 상호에게 ‘운동권 학생’ 이란 단지 ‘그곳(이층집)’ 에 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는 유부녀 희란을 범하면서 “단지 당신이 아름다워서” 라고 말한다. 섹스는 단순한 욕망일 뿐이며 영화는 그것을 훔쳐보는 또 다른 관음을 즐길 뿐이다.
그나마 의미가 있다면 남편으로부터 억압과 상처를 받고 사는, 그래서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고 생각하는 희란에게 그 짧은 여름날이 ‘자유의 시간’ 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썸머타임’은 불륜과 욕망과 그로 인한 비극조차 80년 광주가 가져온 비극의 산물이라고 애써 강조하려 한다.
그럴수록 반복적이며 노골적인 노출과 섹스는 한낱 눈요기란 인상처럼 느껴지고, 주변인물들의 에피소드까지 어색해지는 것은 단순히 배우들의 서툰 연기 탓만은 아닐 것이다.
폭력과 성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통찰하든가 아니면 단순한 관음이 아닌 육체적 욕망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얼마나 자주 “벗기느냐”로 상품성을 살리려는 의도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는 그것을 희석하려는 장치에 불과하다.
박재호 감독은 가족파괴와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하는 독특한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평가와 달리 흥행에 실패하면서,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현실이 되면서 자기 스타일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쁘와종’ 에 이어 또 한번 들고나온 섹스물 ‘썸머타임’. 안타깝게도 그 역시 어떻게 해서든지 흥행을 해야 살아 남을수 있다는 강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대현기자
leedh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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