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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은희야 우리딸 은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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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은희야 우리딸 은희야

입력
2001.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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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시 예지학원 화재사망자 영결식이 24일 열렸다. 이 참사로 숨진 이은희(李恩姬ㆍ18ㆍ건국대부고 졸)양은 어버이날인 8일 부모에게 편지를 올렸다.올해 서울여대 생물공학과에 합격하고도 “의대에 꼭 진학해 좋은 의사가 되겠다”며 재수를 하던 은희양의 편지는 유언이 되고 말았다.

편지에는 서울에서 커피 대리점을 하다 당뇨 때문에 충남 공주시 고향집으로 간 아버지를 걱정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영결식에서 어머니가 읽은 편지를 싣는다.

새싹의 푸르름이 한창 아름답던 지난 어버이날 은희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보내온 이 글이 마지막이 되어 이렇게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모님께. 여기 들어오고 벌써 한 계절이 바뀌었네요.

요즘 날씨 점점 더워지죠? 더워진다고 입맛없다고 끼니 거르지 마시고요. 여러 번 맞는 어버이날인데 올해는 유난히 기분이 이상하네요.

여기 있는 동안 엄마, 아빠의 사랑을 절실히 느꼈고 저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저 재수시켜 달라고 많이 대들고 했는데 그 때 일 생각하면 정말 죄송스러워요.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네요.

집에 가면 맨날 투정이나 부리고…. 이번엔 꼭 열심히 해서 기대에 조금이나마 미치도록 노력할께요.

아빠! 아빠는 당뇨가 더 심해지셨다고 들었어요. 혈색도 별로 안 좋아 보이시고요. 저 때문에 그런가 하고 많이 속상하고 죄송스러웠어요.

건강하시고 다시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저 대학에 들어가면 낚시도 가르쳐 주시고요.

엄마! 엄마는 맨날 보고 싶지 않았냐고 물으시죠? 진짜 많이 보고 싶은데 그거 티내면 더 속상하실까 봐 말 못하는 거예요.

전화하면 울까 봐 못하겠고요. 이제 맨날 전화하도록 노력할께요. 걱정 안 하시게요. 저 별로 안 힘들어요.

엄마 이제 저하고 국환이 걱정마시고 엄마 건강 좋아지시길 바래요. 어버이날 카네이션도 못 달아드리고 올해는 정말 엉망이네요. 다음 휴가 때 나가면 꼭 사가지고 갈께요.

몸 건강하시고요. 저도 공부 열심히 할께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2001년 5월 7일 은희 올림

사랑하는 은희야! 엄마야.

은희야, 엄마 아빠는 어떡하니. 어떻게 너를 멀리 보내니?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 못난 어른들 때문에 은희같은 천사가 꿈을 펼치지 못하고 어떻게 멀리 멀리 갈 수 있니? 지난 어버이날 편지에서 엄마, 아빠 건강 걱정 많이 했지.

네 동생 국환이에게도 용기를 주었었지. 오로지 공부만 하는 너를 아빠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좋은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좀더 설득하지 못한 게 한스럽구나.

은희야, 천국에 가서는 네가 하고 싶은 네 꿈을 마음껏 펼치거라. 그리고 편히 쉬거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은희에게 아빠, 엄마가.

/李柱泰(45) 金占禮(42) 예지학원화재사망자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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