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만에 본 상하이(上海)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황푸(黃浦)강 뿐이네"1월 16일 중국 상하이를 비밀스럽게 방문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이 국제도시를 둘러본 뒤 소감을 이렇게 내뱉었다.
우리의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 중국의 개방을 상징하는 도시, 그리고 이제는 첨단기술입국의 중심지. 상하이를 찾는 사람들은 그때마다 압도를 당한다.
상하이가 주는 강한 느낌은 오랜 역사나 경제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이 도시가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스스로 변하기 때문에 발산하는 에너지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상하이는 중국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
푸둥(浦東)은 상하이를 가로질러 양쯔(揚子)강으로 이어지는 황푸강의 동쪽 지역을 이른다. 강 서쪽이 조계지(租界地) 등 옛 상하이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면 푸둥은 집 몇 채 없던 허허벌판에 아예 새롭게 만들어진 신시가지다.
김 위원장이 둘러본 제너럴 모터스 공장, 화훙(華虹) NEC, 상하이 벨 등을 비롯해 장장고과기원구(張江高科技園區ㆍ하이테크 단지), 국가인간게놈센터, 푸둥 소프트웨어단지 등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여의도의 60배(522㎢)에 이르는 푸둥은 2000년에 끝난 중국의 9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가장 먼저 생긴 금융중심지인 루자쭈이(陸家嘴) 금융무역구를 비롯해 ▦와이가오차오(外高橋) 보세구 ▦진차오(金橋) 수출가공구 ▦장장 하이테크 단지 등 4구역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의 산실은 장장 하이테크단지와 진차오 수출가공구이다.
베이징(北京) 중관춘(中關村)이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자연 발생한 IT 밸리라면 푸둥의 개발구들은 중앙정부의 철저한 계획 아래 빈틈없이 조성되고 있는 점이 다르다.
푸둥에서 투자자문회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정국환(鄭國煥)씨는 전통적으로 공업입지가 두터워 기술과 인력을 유인하고, 새롭게 개발한 기술과 생산품의 수요가 충분한 것이 상하이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철강, 섬유, 화학, 전자 등 전통산업을 거느리고 있는 데다 중국 최대의 소비시장 마저 갖추고 있는 것이 IT 개발의 바탕이라는 이야기다.
"상하이에 비하면 베이징은 시장이 아니지요"중관춘에서 만난 IT 업체 직원도 상하이 얘기가 나오면 꽁무니를 뺐다.
장장 하이테크 단지는 중국 국무원과 상하이 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개발되는 첨단기술단지다. 1992년7월 첫 삽을 떠 20년 목표로 25㎢의 단지를 조성하는 이 곳은 통신, 생물공학산업, 신소재 개발 등 상하이 시가 꼽은 3대 지주산업의 역량이 그대로 결집되어 있다.
단지 동쪽은 중국 내외의 유명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들이 몰려 있는 상하이 푸둥 소프트웨어단지, 서쪽은 모토로라 등이 입주한 첨단 산업지역이다.
남쪽은 과학기술 중심의 대학과 기술원, 훈련소가 밀집해 있고 나머지 지역에는 IT의 초단기 육성과 상업화를 목표로 하는 창업보육(인큐베이터) 센터가 들어서 있다.
푸둥은 시가 주도하는 산학연 협동체제에 따라 푸단(復旦)대, 지아통(交通)대, 통지(同濟)대 등의 고급 인력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이 곳에서는 최근 인공피부 합성, 게놈정보 처리 등 BT가 급성장하고 있다. 푸단대의 BT 연구 열기가 높은 데 주목한 상하이 시정부가 1998년부터 주력 산업으로 지원을 쏟아부어 중국 어느 지역도 따라오기 힘든 경쟁력을 갖췄다.
진차오 수출가공구의 진차오 시안다이(現代)과기원은 대형 산업기반 및 시장과 첨단기술 개발이 잘 조화된 상하이의 강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단지에는 2000년 말 현재 시에서 발전 가능성을 인정한 72개 회사를 포함해 모두 12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장장 하이테크 단지의 특장이 BT 기술 이라면 진차오는 응용기술 개발에 강하다. 화훙NEC 등 집적회로 생산 업체, 휴렛패커드 같은 컴퓨터 제조업체, 상하이 벨 등 통신장비 제조 업체 등이 모두 이 곳에 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아들 장미옌헝(江綿恒) 중국과학원 부원장이 만든다는 반도체 공장도 이곳 진차오에 세워진다.
지난해 단지 매출 456억 7,000만 달러. 류샤오핑(柳孝平) 진차오 단지 부총경리는 "장장 하이테크 단지, 차오허징(漕河涇) 신흥기술개발구 등 상하이 6대 하이테크 단지의 나머지 매출 합의 1.5배에 이른다"고 말했다. 푸둥 전체 매출의 28.1%를 차지하는 규모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왕아이청 상하이통지公 연구원 인터뷰
"장장(張江)하이테크 단지는 첨단 기술 기업을 체계적으로 배치해 경쟁을 통한 상승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장장 하이테크 단지에 입주한 상하이통지스마트(上海同濟Smart) 식별기술 유한공사의 왕아이청(王愛成ㆍ24) 연구원은 체계적인 기업 배치를 정보기술(IT)의 생산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 기업과 합작해 지문식별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이 회사가 지난해 4월 입주한 곳은 단지 내 상하이푸둥소프트웨어센터(上海浦東軟件園).
이 센터에는 1999년 8월 개원한 뒤 전자상거래, 보안 솔루션 분야 등의 기업이 40여 개가 입주해 있다. "제조업은 제조업끼리, 연구소는 연구소끼리 모아 놓은 푸둥 설계의 대표 사례"라는 것이 王 연구원의 설명이다.
입주 기업들의 창업자는 푸단(復旦)대 등 현지 대학 출신이나 유학파 연구원을 비롯해 베이징(北京)에서 성공한 IT 기업가들이 대부분. 거의 모든 기업이 정부에서 우수 기업에 붙여 주는 횃불 마크를 딴 상태다.
게다가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 주룽지(朱鎔基) 총리 등 최고위 관리들이 자주 방문해 관심을 표시하는 것도 업체들의 사기를 북돋고 있다고 王 연구원은 말했다.
■市, 회사설립·경영·회계자문등 지원
중국은 1978년 이후 외자 유치를 위해 여러 가지 세금 혜택 등 여러 우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상하이(上海)도 예외는 아니다.
푸둥(浦東)의 경우 외국계 기업은 이익이 날 때까지, 그리고 이익이 난 후 2년 동안 법인소득세(15%)를 면제 받는다. 그 후 3년 동안은 50%의 세금만 내면 된다.
특히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을 활용한 하이테크 기업은 추가로 3년 동안 10%의 법인세만 납부한다. 또 생산액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외국계 기업의 법인세는 수출량이 그만큼 될 때마다 10%로 감면된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다른 경제특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상하이의 특별한 이점은 창업 및 기업활동을 위한 시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든든한 투자 여건이다.
이른바 '이먼시(一門式) 서비스'는 시 당국이 회사 설립부터 경영ㆍ회계 자문은 물론 슈퍼 컴퓨터 등 연구 장비 임대까지 도맡는 체제다. 행정 낭비를 막기 위한 '간소화와 지원 전략'이 외국 기업 입주를 한결 수월하게 만들고 있다.
벤처 투자자금도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형성된 편이다. 현재 자본금 규모 300만~1,000만 달러 정도의 대만ㆍ홍콩계 7개 기술 컨설팅 회사가 푸둥에 들어와 있다.
대만계 한 투자회사 관계자는 "길어도 5년 안에는 좋은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판 나스닥인 '차스닥'의 출범이 임박한 데다, 중국 위안화의 위력이 강해지는 것의 이런 낙관의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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