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한다는 것은 교도소 담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자칫 한 발을 헛 디디면, 교도소 안쪽으로 굴러 떨어질 수가 있다. 정치자금을 만지는 일이 그렇다는 것이다.마땅한 비유는 아닌 듯 싶으나, 우리나라에서 사학(私學)을 운영ㆍ관리한다는 일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열악한 학교재정을 이리 변통, 저리 변통하다 보면, 촘촘한 규제의 법망에 얽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보기를 우리는 지난 11일, 공교롭게도 '스승의 날'을 나흘 앞두고 법정구속된 한동대학교(浦項) 김영길 총장(62)과 오성연 부총장(63)의 업무상횡령 및 교비(校費)전용 사건에서 보고 있다.
김 총장 등의 기소내용은 97~98년 사이 53차례에 걸쳐 학교 돈 52억8천만원을 불법 전용하고, 94차례에 걸쳐 교육부(당시) 허가없이 103억3,000만원을 기채했다는 것 등인데, 사건을 심리한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유철환 부장판사)는 거의 모든 혐의의 유죄를 인정하고 각각 징역 2년과 1년6월(구형은 4년과 2년6월)을 선고하면서, 두 피고인을 법정 구속한 것이다. 법정구속 사유는 죄질이 나쁘고, 해외 출장이 잦은 것 등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죄질'은 오히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협의내용 중 보조금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사례에 잘 드러나 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다.
95년에 첫 신입생을 뽑은 한동대는 96~98년 연3년에 걸쳐 교육부가 선정하는 교육개혁 최우수 대학교으로 뽑혀 특별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학교재정이 어려운 터라, 그 중 15억원을 체불중인 교직원 인건비와 공사비로 충당하고, 보름 뒤에 원상회복한 것이 문제였다. 이 것이 앞의 법 제22조 위반 (최고3년 징역)이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예로, 94차례 불법기채 중에는 대학의 이영덕 이사장(前國務總理)가 보다 못해 빌려 준 3446만원도 들어 있다. 분명한 것은 문제가 된 횡령ㆍ전용액중 김 총장 개인 차지는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이다.
여하간, 한동대는 95년 개교 이래, 1만5,000명의 후원자를 확보하여 450억원의 기부금을 모으고, 7,000평의 교육시설을 1만8,000평으로 늘리는 등 학교자산의 700억원 순증(純增)을 기록하고 있다.
학생 정원도 400명에서 2,400명으로 늘었고, 영어와 컴퓨터 중점 교육으로 명성을 얻어, 외국 IT기업의 제휴, 구인(求人)희망이 밀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일취월장(日就月將)의 선도자는 지금 쇠고랑을 찼다. 교도소 담위를 걷는 사학 운영의 실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교육 열정과 실정법은 별개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죄질'과 교육실적을 비교해 보면 어떤가.
총장과 부총장의 동시 법정구속이 불가피 했을까. 검찰도 걱정하지 않던 도주의 우려가 왜 갑자기 생겼을까.
법은 어떻든, 대학 총장의 직책과 권위, 교육자로서의 명망 따위는 한 푼 고려의 가치도 없는 것일까. 그 흔한 정상론은 다 어디 갔을까.
혹시 우리 법이 너무 촘촘한 것은 아닌가. 그 운영이 너무 경직된 것은 아닐까. 혹시 오만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이 사건에는 더 명석(明晳)한 배심(陪審)이 있다.
법정구속 나흘 뒤인 5월15일 '스승의 날'에, 이 날 수업이 없는 한동대생 1,500명이 경주 구치소 앞에 모였다. 서울에서 달려 온 학부모와 교수 등 300명이 동행했다.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거듭해 불렀다. 김 총장의 애창곡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허밍하며 구치소 정문에 카네이션을 놓았다. 송이 송이 쌓이는 붉은 꽃송이로 학생들의 배심 평결은 끝났다.
이제 우리는 쇠고랑과 카네이션을 함께 보고 있다. 슬픈 '스승의 날'을 보내고 나서, '교육의 참뜻'을 다시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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