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5월19일 영국의 군인 겸 고고학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영불 해협 근처의 클라우즈힐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47세였다. 로렌스라는 성을 지닌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일 것이다.66년 전 오늘 죽은 토머스 로렌스는 소설가 로렌스와 구별해서 흔히 '아라비아의 로렌스'라고 부른다. 그는 당시 중동 지역의 지배적 세력이었던 터키에 맞서 아랍 민족운동을 돕는 데 삶의 절정기를 바쳤다.
웨일스의 트레마독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에 메소포타미아 유적 탐사팀의 일원으로 중동을 방문하면서 아랍 세계와 인연을 맺었다.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된 계기는 제1차세계 대전이었다. 그는 영국 육군 정보 장교로 카이로에 파견되어 적국인 터키의 후방 교란 작전에 종사했다.
로렌스는 뒷날 독립 이라크의 왕이 될 파이살과 손을 잡고 유목민인 베두인족의 유격대를 지휘해 철도를 폭파하는 등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로렌스가 이끄는 유격대의 아카바 점령과 다마스쿠스 점령 등 연이은 무훈은, 터키군에게 체포됐다가 탈출하기를 반복한 로렌스 자신의 무용담과 어우러지며, '아라비아의 로렌스'신화를 한껏 부풀렸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지혜의 일곱 기둥'(1926)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손을 거쳐 1962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제목으로 은막에 올랐다.
서방 저널리즘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계 자본의 영향으로, 아랍 세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는 둔중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중세에 가장 찬란한 문명이 꽃핀 곳이다. 서남 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렀던 중세 이슬람 세계는 고대와 근세를 잇고 동과 서를 연결하는 인류 지성의 혈맥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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