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루를 탄 술이 과연 인체에 유익한가 아닌가가 요즘 한국 주당들의 화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채굴된 금의 무게는 약 12만 5,000톤.사람들의 손가락과 귓바퀴에 달린 장신구에서부터,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는 미 연방금괴저장소 포트 녹스에 감춰져 있는 금덩어리까지 다 합한다 해도 겨우 이 정도다. 울산 조선소에서 생산하는 웬만한 유조선 한 척에도 거뜬히 실릴 정도의 양일 뿐이다.
이 얼마 안되는 양의 금속, 반짝인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런 기능도 갖고 있지 않은 황금은 그러나 인류의 수천 년 경제사를 지배해왔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ㆍ금융분석가인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는 황금을 테마로 서술한 방대한 인류 경제문화사이다.
그는 그리스ㆍ로마 신화의 시대로부터 현재의 IMF와 인터넷 경제시대의 사이버머니까지 황금에 대한 열정이 어떻게 인류경제의 흐름을 변화시켜 왔는지를 서술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집착과 광기의 역사'였다.
번스타인은 경제학자의 전문지식에다 탁월한 사회문화사적 조명을 더해, 세계경제사를 흥미진진한 인간의 영광과 몰락의 드라마로 풀어낸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으로 출항하면서 "황금을 가진 사람은 영혼이 낙원에 가는 것까지도 도와주는 보물을 가진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찾던 낙원은 곧 금이었다. 여호와조차 모세에게 황금으로 신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금덩어리로 변해버리게 만들었던 불쌍한 미다스 왕.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카이사르에게서 권력을 얻어보려 했지만 결국 적들에 의해 목구멍에 끓는 황금이 들이부어져 살해당한 로마의 투기업자 크라수스. 매년 자신의 몸무게를 금으로 환산했던 몽골의 칸.
'동방견문록'에서 "가는 곳마다 황금이 있었다"고 적었던 마르코 폴로.
번스타인이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노란색(금을 가리키는 gold는 노란색을 의미하는 gelo에서 유래했다) 금속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 뉴턴은 여생을 물리학연구소가 아닌 영국 조폐국에서 보냈다.
중국에서 지폐가 발명되면서 금의 가치도 달라졌지만, 프랑스의 영광 드골까지도 보다 많은 금을 소유함으로써 국위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 가치가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베잔트 금화, 디나르, 파운드화 등 화폐는 결국 무너졌고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금본위제 포기 선언을 한다.
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장인 그린스펀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우리에게 그린스펀이 있는데 누가 금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기사를 실었다.
저자는 파라오의 황금 미라에서부터 지금의 달러 패권시대까지 이처럼 사건과 인물사를 중심으로 '황금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상 모든 문명이 황금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8세기 누비아인들은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아랍인들과 금 1온스에 소금 1온스를 맞바꾸는 교역을 했다.
그들에게는 소금이 금보다 더한 생명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침묵 속에서 소금과 금을 교환했던 젠느와 팀북투의 소박한 원주민들일지도 모른다."
번스타인의 결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황금의 역사를 말하면서 인간 탐욕의 역사를 말하는 셈이다.
"대양에서 배가 난파할 때 금화가 가득 찬 가방을 들고 바다로 뛰어든 자가 있다, 과연 그가 금을 소유했는가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했는가?" 책의 첫머리에 인용한 존 러스킨의 이 질문에, 기막히게 매혹적인 이야기를 끌어오던 번스타인은 책의 마지막에서 "금이 그를 소유했다"고 답한다. 금이라는 환상을 좇는 인간의 멍청함에 대한 경고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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