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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24시 / 히딩크 "나, 한국축구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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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24시 / 히딩크 "나, 한국축구에 건다"

입력
200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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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해가 뜨는 모습은 언제 봐도 황홀하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에 희망을 심어준다. 워커힐호텔 16층 스위트룸에서 굽어보는 서울의 아침은 활기로 가득 차 있다. 네덜란드의 교통체증도 알아주지만 서울은 정말 입이 막힐 정도다. 8시30분 식사하면서 갖는 아침미팅. 오늘은 좁은 지역서의 순간적인 압박과 빠른 공수전환을 중점적으로 가르칠 생각이라고 코치들에게 얘기했다.컨페더레이션스컵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2주. 첫 상대 프랑스가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지.

그런 프랑스를 상대로 내가 "이겨 보겠다"고 큰 소리쳤으니.. 하지만 일본을 5-0으로 대파한 강적을 만나 선수들이 지레 겁먹을 것이 뻔한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길이라면 무슨 말을 못해? 지네딘 지단같은 플레이메이커가 한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한국이 나를 찾지도 않았겠지.

미사리구장의 파란 양잔디위로 스프링클러가 힘차게 돌아간다. 좁은 지역에서 미니게임을 시켰다.

순간적인 압박을 돌파하는 법을 가르쳤지만 쉽지 않다. 그동안 비디오분석을 해봤더니 이 부분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 그러려면 패스의 정확도가 요구된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계처럼 몸에 배게 할 수밖에 없다.

오전, 오후 2시간씩 하는 훈련에서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연습을 대충하는 선수치고, 또 항상 '왜'라는 의문을 품지 않는 선수치고, 몸 관리를 안하는 선수치고 잘되는 경우를 본 일이 없다. 나도 술은 가끔 들지만 담배는 안피운다.

나는 질문을 많이 하는 선수가 좋다. '이런 연습이 왜 필요한가. 이런 플레이는 하지 말라고 하는데 왜인가' 등등. 그래야 머리로 하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한국선수들의 자질은 훌륭하다. 나는 그런 선수들이 몰랐던 것을 조금씩 깨우쳐 줄 뿐이다.

저녁메뉴로 스튜, 새우, 갈비찜 등을 먹었다.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체중이 조금 늘었다.

비디오분석관과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맞붙는 팀의 장단점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훈련이 끝나면 외출에 제약이 없는 자유시간이지만 우리 선수들은 우직하게도 호텔방에서만 지낸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나니 한 기자가 짖궂은 질문을 던져왔다. "1998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감독시절 도요타컵에서 우승하면 콧수염을 깎겠다고 내기한뒤 이 약속을 지켰는데 컨페더레이션스컵 1회전을 통과하면 무슨 내기를 하겠는냐?" 나는 "결승에 진출하겠다"고 대답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 버릇이다. 비디오분석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축구 이외의 것을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말이라고는 '빨리빨리' '그만' 정도밖에 모른다. 이제 2주후면 세계적인 팀들과 승부를 겨뤄야 한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여론의 혹평이 뒤따르는 것은 승부의 세계에서 너무도 당연하다. 이제 준비하는 단계지만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바뀐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앞두고 부담이 안되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부담이 안된다면 그게 사람인가, 나무토막이지.

이범구기자

lbk1216@hk.co.kr

■히딩크 누구인가

거스 히딩크(Guss Hiddinkㆍ55)감독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자기 일에 철두철미한 프로이면서도 수시로 기분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변덕쟁이이다. 자신의 판단에 '아니다' 싶었던지 이동국 안정환 등 스타들을 대표팀에 뽑지 않았고 자기 여자친구를 취재하려는 한 방송기자에게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아니다. 1960년대말 프랑스 1부리그 리옹과 네덜란드의 PSV아인트호벤 등에서 미드필드로 뛰었으며 잠시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으나 선수생활은 화려하지 못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85년 아인트호벤 감독을 맡으면서부터. 히딩크는 부임 첫 해인 85~86시즌부터 88~89시즌까지 팀을 4연속 리그챔피언으로 이끌었고 88년 네덜란드리그와 FA컵, 유럽챔피언스리그 등 3개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 세계적인 지도자반열에 올랐다. 이후 페네르바흐(터키) 발렌시아(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의 감독을 지냈다.

히딩크 감독은 95년부터 네덜란드대표팀을 맡아 98프랑스월드컵 4강에 진출시키며 78년 대회 준우승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지난해 레알 베티스(스페인)가 2부리그로 추락하는 바람에 감독직을 물러나 네덜란드 축구협회 유소년분과 지도를 맡으며 야인생활을 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인기도 높고 언론의 평가도 좋다. '능력은 있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민주적이다'는 지적도 받지만 세계적인 감독중 한명으로 꼽힌다.

생각하는 축구를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히씽크(He think)'라는 별명을 한국에서 새로 얻었다. 한국언론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히딩크는 최근 언론으로부터 조심스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무릎수술 때문이긴 하지만 그가 한국축구를 위해 보여준 노력이 미흡하다는 것이고, 한국축구에 대한 여론수렴과 분석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주말 수원_부산의 아디다스컵 결승전은 귀국하는 흑인 여자친구(엘리자베스)를 배웅하기 위해 참관하지 않았다. 당초 히딩크는 이날 일본에 가 황선홍의 경기를 관전할 계획이었다.

또 15일 저녁 국내 프로팀 지도자들과의 미팅에는 22분이나 늦고도 공식사과를 하지 않아 매너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히딩크가 이런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성적을 내는 길 밖에 없다. 만에 하나 대표팀의 기량향상이 돋보이지 않는다면 그 역시 편치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히딩크 프로필

△생년월일: 1946년 11월8일

△출신지: 네덜란드 위시

△선수시절: 데 그라파샤프(67~70년) PSV아인트호벤(70~71년), 데 그라파샤프(71~77년ㆍ이상 네덜란드 1부리그), 워싱턴 디플로매츠(76년), 산호세 얼스퀘이크(77년ㆍ이상 미국 축구리그), NEC 니메가(77~81년), 데 그라파샤프(81~82년ㆍ이상 네덜란드 1부리그)

△코치시절: PSV아인트호벤(86~90년), 페네르바체(Fenerbahce, 터키 프로축구리그, 90~91년), 발렌시아(스페인 프리메가리가, 91~93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95~98년), 레알마드리드(스페인 프리메가리가, 98~99년), 한국국가대표팀(2001년~)

△수상경력: 네덜란드리그 3년 연속우승(86~88년,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축구협회(FA)컵 우승 1회(1988년, PSV 아인트호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88년, PSV 아인트호벤) 도요타컵 우승(99년, 레알 마드리드), 96년 유럽선수권 8강, 98년 프랑스월드컵 4강(이상 네덜란드 축구팀)

△네덜란드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불어 등 5개 국어에 능통

■히딩크의 말말말

"네덜란드를 꺾고 싶다."(지난해 12월18일 한국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계약한 뒤 소감)

"어느 정도를 원하나. 머리라도 빡빡 밀어버릴까." (같은 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98년 도요타컵 우승 후 수염을 깎았는데 한국을 월드컵 16강에 진출 시킨 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고 묻자)

"그 친구는 목성에서 온 사람이라 신체가 비정상적이다." (197㎝의 장신인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에게 맞는 옷이 없다는 김대업 주무의 얘기를 듣고)

"목표가 그것 밖에 안돼. 나는 한국팀이 결승에 오르면 산 낚지를 먹겠다." (울산 강동구장에서 대표팀 첫 훈련을 마친 뒤 횟집서 산 낚지를 억지로 먹으려는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에게 핌 베어벡 코치가 "저는 한국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르면 도전해보겠다"며 위기를 벗어나자 히딩크 감독은 베어벡코치를 나무라는 척하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선수나 코칭스태프에게 똑같이 나누어 달라." (1월 중순 아랍에미리트전을 마친 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격려금을 나눠주겠다고 하자)

"여론을 수렴하다보면 내 축구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받을 수도 있다. 나는 오로지 나의 길을 간다." (4월 말 이집트 4개국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구성에 대해 묻자 언론에 흔들리지 않겠다며)

"다리가 불편하지만 그래도 너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3월 중순 진주공항에서 서울행 여객기 탑승 직전 성남 일화의 샤샤를 우연히 만난 뒤 느린 스피드를 지적하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한국 프로축구는 워킹게임이다." (지난달 11일 안양_포항전을 관람 한 뒤 한국축구를 혹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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