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6일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찬한 교과서의 재수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오랫동안 공동보조를 취하지는 못했던 한중 양국의 실질적인 연대는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재수정은 불가능하다'는 원칙론을 고수해 온 일본측에 본격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난징(南京)학살 등 8개항에 머문 중국의 요구는 앞서 35개항에 걸친 한국의 재수정 요구에 비해서는 양과 질에서 약하다. 우리 정부의 요구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일본 언론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충격은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7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외무 장관과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의 전화 회담을 통해 어는 정도 외교적으로 매듭된 것으로 낙관하기도 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한국측 요구를 검증하기 위한 검토위원회를 발족, 16일부터 활동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는 공들여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한 한국 정부에 대한 성의 표시일 뿐 실질적인 재수정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측의 외교공세가 가세됨으로써 일본 정부는 단순한 성의 표시 수준에서 문제를 매듭짓기 어렵게 됐다. 다나카 외무 장관의 입각에서 보듯 일본 정부는 중국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전 총통의 방일 문제와 일부 농산물에 대한 수입제한 조치 등으로 외교적 빚도 지고 있다.
문제의 교과서를 편찬한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를 비롯한 8종의 역사교과서가 최근 많은 부분을 '자율 수정' 한 것으로 밝혀진 것도 부분적인 재수정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명백한 사실 관계의 오류가 아닌 한 재수정은 어렵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17일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출판사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수정된 부분에는 오자, 오기 등의 미수정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오해를 부를 가능성이 있는 표현'도 포함됐다.
569항목을 자주 수정한 후소샤 교과서의 경우 1874년의 '대만 정벌'이라는 표현이 '대만 출병'으로 바뀌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학 명예교수 등 일본의 지식인들이 오류를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체적인 기술의 변경은 아니더라도 간단한 표현 수정은 얼마든지 가능함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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