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소설가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ㆍ73)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에 신작 장편소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북@북스 발행)를 발표했다.백파는 2월 쓰러져 혼수상태에서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했다. 최근 병세가 다소 호전돼 퇴원했으나 노령으로 의식이 완전치 않은 상태다.‘나설 때와…’는 백파 특유의 호방한 남성적 문체와 현재적 역사의식을 흠씬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1957년 한국일보 창간기념 현상 공모에 6ㆍ25를 소재로 한 장편 ‘비극은 없다’가 당선돼 등단한 뒤, 영화 ‘장군의 아들’의 원작 소설인 ‘인생극장’ 등 수많은 장편을 통해 시대를 꿰뚫는 문제의식과 삶의 애환을 그려온 작가의 솜씨가 노련하게 살아 숨쉰다.
배경은 고려말이다. 홍건적이 들끓던 당시 보부상 출신으로 한반도 북녘을 누비며 오랑캐를 물리친 가상의 인물 백현아가 주인공.
그가 여진족 추장 퉁두란티무르(훗날의 이지란ㆍ李芝蘭)와 이성계를 만나 홍건적에게 짓밟힌 땅을 회복하고 동포를 구하는 활약을 하는 것이 줄거리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제목 ‘나설 때와 물러 설 때’에 집약돼 있다. 백현아는 승전 후 공을 다투는 무신들의 세력다툼을 보고 그 바닥은 머물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물러난다.
‘병사의 죽음의 축적으로 자신의 용명을 비약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자만이 무장이 될 수 있는 것인가…그 비리, 비정의 세계’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남자라면 나서야 할 때 나설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설 줄 아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고 백현아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백파는 소설뿐 아니라 ‘식도락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 20년 넘게 ‘맛 기행’을 계속하면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맛집을 소개하고 개척해 온 그는 소설에서나 삶에서나 우리 시대 마지막 ‘풍류객’일 것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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