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고 쳤다고요."가수 이은미는 요즘 밀려 드는 인터뷰 신청을 거절하느라 바쁘다. 한 월간지에 기고한 '당신도 가수인가'라는 글에서 거론한 '녹음할 때 빼놓고는 평생 노래 한번도 부르지 않는 가수들'의 팬의 항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뒤통수 조심하라'는 말도 안되는 협박성 메일이 있는가 하면 '누나들 피곤한데 왜 노래 안 한다고 난리냐"라는 식의 반응도 있다.
정작 그를 더 맥 빠지게 하는 것은 두 번째 반응이다. 가수에게 노래를 요구하는 데 대해 이런 반응이 오다니.
이런 가요계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회의가 들 때도 많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우리처럼 가수 데려다 놓고 코미디를 시키겠어요.
뮤직 비디오에 가수가 안 나오고 배우만 나오는 나라도 없을 거고. 라이브요? 제대로 하려면 소리를 안 잡아 주는데 어떻게 엄두를 내겠어요.
방송사 중 라이브 할 수 있는 곳은 KBS MBC에서 각각 한곳 뿐이고. 거기서도 만족할 만한 소리를 잡기는 어렵죠."
단도직입적인 '폭탄'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칼럼이 일으킨 반응에 다시 한 번 놀란 이은미로서는 이참에 그간 삭혀왔던 '분'을 다 쏟아 놓을 작정 같다.
"가수는 노래하는 직업이잖아요. 뮤직비디오가 없어도, 얼굴이 좀 예쁘지 않더라도 다양한 가수의 노래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문화, 그런 게 좋지 않은가요?"
이은미의 발언에 대해 인터넷 상의 공방이 치열하다. '이은미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는 반응이면,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도 만만찮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간 450회의 공연, 방송에서도 라이브만 고집해온 덕이다.
'가요판'에 대한 울화는 준비중인 새 음반에 더욱 열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5집 '노블레스'는 지난해 10월에 발표하려다 작업이 늦어졌다.
70, 80곡을 받아 이중에 10곡을 엄선했다. 쉽지 않았다. 이은미다운 것, 그리고 이은미답지 않은 곡을 적정한 비율로 선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레코딩 작업도 길었다. 프로듀서도 혀를 내두를 만큼 탁월한 '듣는 귀'를 자랑하는 이은미이기에 'OK'사인이 나도 마음에 들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점점 더 귀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요. 원하는 목소리요. 음, 거칠고 굵으면서도 강한 파워가 느껴지는 흑인 보컬 색이랄까."
코발트빛에 가까운 보라색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그의 풍부한 보컬은 어떤 노래와 접하더라도 곧 '이은미식 노래'로 만들어 버린다.
5집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준비중인 '선 플라워'는 일본 정상급 여가수 다카하시 마리코의 노래. 선율이 고운 팝스타일의 곡이 매력적이어서 미국의 로버타 플렉이 그의 노래를 많이 리바이벌 했다.
마리코의 소속사인 빅터에서 "한국 가수중에선 이은미가 불렀으면 좋겠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마리코의 노래는 시조처럼 운율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특징.
그런 가사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작사가 20여명이 붙어 결국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을 작사한 조은희의 가사로 결정됐다.
이적의 펑키한 매력이 돋보이는 '꿈의 죽음' 등 또래의 가수들이 엄두내지 못하는 다양한 영역을 공략하고 있다.
음반은 현재 미국에서 막바지 믹싱 작업 중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대중의 취향을 '럭비공' 이라고 표현한 그는 대중에 함몰되지 않고, 그들과 너무 떨어지지도 않는 음악의 길을 걷고 싶어 한다.
"한 두장의 음반만 더 내고 나면 예쁜 차 하나 사서 밴드와 함께 전국을 돌며 공연하고 싶어요. 차에서 먹고 자고 음악하고." 아직 너무 젊은 이은미의 꿈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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