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47) 시인은 요즘 문학 웹진 인스워즈닷컴(www.inswords.com)에서 '하이퍼문학'을 제작하는 데 푹 빠졌다. 5월호 웹진에는 시스틴 성당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다.클릭하면 김 시인의 원고와 미켈란젤로의 그림 '최후의 심판'이 뜨고, 성가가 흐르기 시작한다. 원고 내용 중 종교음악가 팔레스트리나의 이름을 클릭하면 관련정보를 볼 수 있고, '성당 내부'를 클릭하면 화면이 성당 내부 모습으로 바뀐다. 시인이 제작하는 하이퍼문학은 그러니까 '입체 문학'을 일컫는 것이다.
무인도에 갇혀도 빵보다 컴퓨터가 있어야 살아 남는다는 세상이니, 요즘 글쟁이가 하이퍼문학을 시도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기야 그는 요즘 글쟁이로 부르기엔 나이가 든 축이지만, 인터넷의 바다를 떠다니는 게 질리지 않는 그에게 21세기는 아주 잘 맞는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첨단의 문학에 열중하느라 분주한 것처럼 그는 1980년대도, 90년대도 바쁘게 살았다.
80년대에는 잦은 감옥살이와 단식투쟁에 이력이 붙을 정도였고 90년대에는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해 봤다.
소설, 희곡, 영화 시나리오, 오페라 대본, 번역서.. 그리스신화의 미다스왕이 손댄 것은 모두 금으로 변했듯 그가 손댄 것은 모두 글로 변했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아날로그 문학을 디지털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0년 단위로 뒤엎어지는 나라에서 그는 어느 때도 피하거나 숨어버리지 않고 시대의 최전선에 섰던 셈이다.
그는 시대의 정수(精髓)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듬은 결정(結晶)을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글쓰기 행위 중 '교양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음악 관련 형용사가 '훌륭하다' '걸작이다' 등 8개 정도에 불과한 기존 책들을 보고 열받아" '음악이 있는 풍경'을 집필했다. 또 "효자가 갑자기 난폭해졌다는 둥 맥락없는 이야기가 납득이 안돼" '상상하는 한국사'를 썼다.
그는 자신의 시집이 많이 팔리면 이해가 안되지만, 자신이 쓴 교양서의 인기가 그저 그러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시집은 소수의 선택된 독자를 위한 것이고, 교양서는 비슷한 취미와 관심을 가진 대중을 위해서 썼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온 그가 지금껏 게을리하지 않는 게 있다. 시와 술이다. 그는 80년 등단 이래 스무 권이 넘는 시집을 펴냈다.
4ㆍ19를 노래했던 '지울 수 없는 노래'부터 신세기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핀 최근 시집 '해는 뜨다'까지 그의 시는 아름다운 감성과 날 선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술도 시만큼이나 친해 양주 1병을 12시간쯤 마시면 '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의 친구에 따르면 시인은 "술 없이 밋밋하게 사람 만나기를 무던히도 꺼리고,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슬리퍼를 끌고라도 뛰어나온다".
그는 자신을 '예술의 좌파'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치열한 의식을 갖고, 예술세계의 순수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게 삶의 지향점이다.
글쓰기 행위는 다양하지만 시대를 감지하는 데 무디지 않아 , 그의 문학적 생산물은 언제나 신선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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