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재계, 정치권 사이의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이 논란은 재벌 개혁의 근간에 관한 것이어서 국민들의 관심이 크지만, 진행과정이나 내용을 보면 핵심을 벗어나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전경련은 정책개선과제를 담은 건의서 '한국경제의 점검과 정책과제'를 정부와 여당에 전달했다.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도 규제개혁과제가 담긴 건의서를 정부에 냈다.
한나라당은 재벌 정책의 수정을 공식 요구했으며, 민주당은 이에 대해 기본 골격은 바꿀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재벌 개혁의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벌 개혁은 IMF체제 이후 국민적인 합의 사항으로서 그 동안 그토록 강조되었고, 강력히 추진되어 왔다.
그런데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다. 경제가 어려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인지, 집권 하반기를 틈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인지 도무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이러다가 자칫하면 재벌 개혁이 물건너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중요한 경제 문제가 또 다시 정치 논리에 좌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재벌 개혁이 유야무야 되어 결국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상실할까 우려된다.
정부는 이번 논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동안 정책수행에 있어 일관성 투명성이 부족했다.
본질적인 사항은 제대로 짚지 못했고, 경제관료들의 설익은 발언이나 말 바꾸기도 적지 않았다. 상황 논리에 눌려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국내외에서 정부의 개혁의지를 의문시하는 발언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재계의 요구에는 무리한 것이 많다. 경영의 투명성이나 지배구조 등에 대한 대국민 약속 중 과연 지켜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경기 활성화란 명목으로 각종 제도와 규제 등의 철폐나 완화를 주장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더욱 외면당할 것이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우리의 신용등급을 당분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정부와 재계, 정치권은 이기주의와 독선을 버리고 무엇이 경쟁력 향상에 도움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원칙을 갖고 고칠 것은 빨리 과감히 고쳐야 한다. 그래야 재벌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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