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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소설 '꿈' - 구도의 길도 사랑도 모두 꿈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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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소설 '꿈' - 구도의 길도 사랑도 모두 꿈이었나

입력
200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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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조신(調信)이라는 중이 태수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관세음보살 앞에서 빌다가 잠이 들었다.깨어보니 처녀가 눈앞에 있었다. 스님은 여자와 함께 산을 내려와 다섯 남매를 낳고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입에 풀칠도 못할 정도로 가난해져 막 헤어지려던 찰나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삼국유사에 소개된 조신설화(調信說話)다.

소설가 김성동(54)씨가 조신설화를 쥐고 돌아왔다. 다른 손에는 고 김광섭 시인의 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들었다.

그는 조신설화를 모티프로 삼은 소설 '꿈'(창작과 비평사 발행)을 펴냈고, '어디서.'를 작은 제목으로 달았다. '국수(國手)' 이후 6년 만이다.

오랫동안 먹었던 절밥의 기운으로 그의 소설은 향 냄새가 밴 듯 어지럽다. 한 줄 한 줄을 따로 찢어내 엮으면 불시(佛詩) 한 편으로 읽힐 수도 있다.

"낮게 깔려 있던 놀이 물무늬 같은 잔주름을 잡으며 가느다랗게 흔들리던 날" 젊은 스님 능현은 속세의 여대생을 만난다.

스물 여덟살의 수좌에게 여자사람의 살내음은 숨이 멎는 듯 진하고 달콤하다. 하물며 "보름달처럼 둥글고 넉넉하게 퍼져나간 방치"와 "뒷동산의 묵뫼인 듯 도도록 솟아오른 젖무덤"이 눈앞에 어룽거리니 결가부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대생 정희남이 능현을 뒤흔들어 놓고 사라진 뒤 청년 스님은 여인이 가르쳐 준 '문학'을 화두 삼아 소설을 쓴다.

공모에 당선된 소설은 그러나 불교계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당선이 취소되고, 승적에서도 제적된다.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꿈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고백대로 쉰을 넘어 펴낸 능현 이야기의 절반 가량은 현실로 채워졌다.

그는 능현처럼 '빨갱이' 아버지를 두었고, 문학의 길로 이끈 여인이 있었으며, 공모에 당선된 소설 '목탁조' 때문에 등록하지도 않았던 승적에서 제적됐다.

나머지 절반은 조신설화에 기댄 것이다. 능현은 3년만에 나타난 정희남을 '반야'로 부르면서 함께 토굴에 들어가 살기로 한다.

파계하였으되 구도의 길 걷기를 멈추지 않으려던 능현의 수행은 반야의 실종으로 중단된다.

"물무늬 같은 잔주름을 잡으며 시나브로 잦아들던" 쇠북소리에 놀라 능현이 눈을 떠 보니 한낱 꿈이고, 잠든 새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 작가는 끝에 능현의 꿈마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해지는 '사족'을 달았다.

김성동의 이름 앞에는 항상 '만다라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소설 '만다라'(1978)의 파장이 컸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28세의 청년이 쓴 소설은 젊은이의 정신적 고뇌를 대변하는 것으로 읽혔고, 산업화에 대한 경고의 울림으로도 받아들여졌다.

그는 그러나 '꿈'을 출간하면서 "만다라는 방황하는 청년기에 썼던 치기어린 낙서 같은 것"이라고 몰아 부쳤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세상에서 텍스트의 가능성은 활짝 열려지지만, 붙잡아야 할 화두가 희미한 시대에 '꿈'은 어떻게 해몽해야 할 할지 막막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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