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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피에르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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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피에르 퀴리

입력
200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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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15일 프랑스의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몰(歿).아내인 마리 퀴리가 워낙 유명해서 퀴리라는 성(姓)의 대표권이 폴란드 출신의 여성과학자에게 있는 듯도 하지만, 피에르 퀴리가 오직 아내 때문에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만으로도 과학사에 이름을 새길 만한 뛰어난 물리학자였다. 파리 출신의 피에르 퀴리는 소르본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자성물리학(磁性物理學)의 주춧돌을 놓은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이 분야에서 세운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물질의 자화율(磁化率)이 절대온도에 반비례한다는 '퀴리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와 결혼한 뒤에는 아내와 함께 방사능 연구에 진력해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다. 그는 1903년에 아내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세 해 뒤에 마차에 치어 죽었다.

퀴리가(家)는 과학자 집안이다. 남편의 후임으로 소르본의 첫 여성 교수가 된 마리 퀴리는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아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과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이렌도 방사능 연구에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그는 어머니 마리 퀴리의 조수 출신인 핵물리학자 장 프레데릭 졸리오와 결혼했는데, 퀴리라는 성의 아우라를 포기하는 것이 아쉬웠는지 이들 부부는 졸리오퀴리를 성으로 삼았다.

졸리오퀴리 부부도 1935년에 노벨 화학상을 함께 받았다. 2대에 걸쳐 세 차례의 노벨상이 퀴리가에 주어진 셈이다.

소르본과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낸 장 프레데릭 졸리오퀴리는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으로서 핵무기 개발과 사용에 반대하는 스톡홀름 호소문을 기초했고, 스탈린 상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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