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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 노트] 서구인의 바둑가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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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 노트] 서구인의 바둑가치 재발견

입력
200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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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시는 5월 10일부터 16일까지를 '바둑 주간(Baduk Week in San Francisco)'으로 선포했다. 11, 12일 명지대 용인 캠퍼스 방목기념관에서 개최된 세계 최초의 '국제 바둑학 학술대회'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바둑학 대회는 1997년 세계 최초로 명지대에 바둑학과가 설립되면서 본격화한 바둑의 학문화 작업을 위한 첫 착점. 동시에 바둑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시발점으로서 한국은 물론 세계 바둑계의 관심을 모았다.한국, 일본, 중국 및 미국, 유럽, 호주 등 세계 18개 국에서 모인 25명의 각국 연구자들은 바둑의 기술적인 측면 뿐 아니라 바둑과 문화, 바둑 교수법, 바둑 게임 이론, 바둑의 치매 방지 효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각자 전공에 따라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논문들이 지금까지 동양권에서 발표된 수준을 크게 넘어 서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바둑을 바라 보는 시각이나 접근법들은 매우 참신했다. 서구 사회에 바둑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지 불과 40여년밖에 되지 않는데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이렇게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연구자들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바둑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은 흑백이 동등한 조건하에서 서로 한 수씩 교대로 둔다는 지극히 간단한 규칙 아래 운영되는 바둑이 슈퍼컴퓨터조차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변화를 창조한다는 사실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들 중 상당수는 바둑을 체스나 브리지와 같은 수준의 '또 다른 게임'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인 정신적 과학적 원리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현대 과학적 측면에서 접근, 해명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선이나 한의학이 그랬듯이 동양인들에게는 선험적 혹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들이 서구 합리주의의 입장에서 재해석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물론 바둑의 지평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동안 바둑의 승부적인 측면만 강조해 오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했던 다양한 가치들을 뒤늦게 외국인의 눈을 통해 재발견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오히려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단상의 발표자들의 진지한 자세와 뜨거운 열정에 비해 단하의 열기가 너무 썰렁했다는 것. 대회 자체가 연구자들 중심이었다고는 하지만 프로 기사를 비롯해 국내외 바둑 관계자들의 참석이 너무 저조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국내 바둑학의 현주소일 것이다. 그러니까 국내 바둑학 학술대회보다 국제 대회를 먼저 열었겠지.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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