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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일병 김병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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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일병 김병준에게

입력
2001.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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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준아, 지난번 휴가를 끝내고 돌아가는 네 등 위에서 얼핏 어떤 외로움을 본 것 같다. 몇 번 침을 맞았는데도 여전히 절룩거리는 네 발걸음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왜 발을 다쳤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돌아갔던 병준아, 고참에게 발을 걷어 차였거나 혹시 폭행 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무척 걱정되었다.

이제 다 나았다니 안심이다. 그런데 너 보고 편한 곳으로 가고 싶지 않느냐고 누군가 권했을 때 너는 단호히 거절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게 과연 가능할지,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해도 낯선 곳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국회의원 아버지 배경으로 그렇게 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텐데, 그것을 수락할 수는 도저히 없다고 하는 네 마음이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었다.

병준아! 이 시간에도 보초를 서고 있겠지.. 낮에는 출입하는 사람이 많아 바쁘겠지.

어둠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밤에는 무엇을 생각하니? 밤 보초는 약간 외롭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겠지. 병준아, 그럴 때면 가끔 머리를 들어 밤 하늘의 별도 쳐다보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들을 수 있는 넉넉함이 너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이제 어엿한 여대생이 된 병민이가 언젠가 "오빠, 아빠가 나만 예뻐해서 미안해"라고 하자 병준이 네가 "괜찮아! 나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런 마음이면서도 작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최고위원 경선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다 해준 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와 마음 속에서 화해한 것은 돌아 가신 지 15년이 지난 후였다. 잘못하신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있었다.

서울지역으로 올라오시지 못하고 줄곧 경기도 외곽지역에서만 초등학교 교장을 해오신 것에 대해 은연중 가볍게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80년 새해 제사상 머리에서였다. 이런 나의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필경 상처 입으셨을 할아버지께 머리를 수그리고 통곡으로 사죄했던 일이 생각난다.

병준아, 네가 가끔 해주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네 전화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면서 "네가 징그럽다"고 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사실은 정말로 자랑스럽다. 우리 병준이가 어른이 되었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제 아들을 그렇게 얘기하면 팔불출로 볼까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병준아 고맙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나 때문에 생겼을 네 마음의 상처를 네가 소화해내고 있고 그러고도 남는 것은 용서를 하려고 하고 있구나.

병준아, 봄 가뭄이 심한 이 5월에 너는 "타는 목마름으로" 상처 받고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는 우리네 삶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구나.

나의 아들 일병 병준아!

金槿泰 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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