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의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행정당국의 마구잡이식 공사로 붕괴 위험에 직면했다.불교계가 중심이 된 탑골공원 원각사복원위원회가 11일 공개한 사진과 비디오테이프에선 석탑 곳곳의 균열 및 침하 현상과 탑골공원성역화 공사를 위해 굴삭기로 석탑 바로 옆 지반을 파헤치는 장면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사진과 비디오테이프를 본 뒤 이날 석탑과 공사현장을 직접 살펴본 문화재 전문가 정명호(鄭明鎬ㆍ67ㆍ전 동국대 불교미술과 교수) 박사도 "석탑의 6층이 주저앉고 2층에 심하게 파손된 흔적이 보이는 등 붕괴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공사를 즉시 중단하고 해체 복원 작업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날도 서울시는 중장비로 석탑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의 독립선언기념비 철거작업을 했으며 진동과 소음이 너무 심해지는 바람에 주변 상인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석탑의 상태
탑신부 6층 소재회상과 7층 원통회상 사이에 있는 2중 옥개석의 상대부가 탑신으로부터 상당히 이탈했고 동남향으로 확연하게 기울어 있다.
또 탑의 하중을 떠받치는 4개의 지대석 중 하나가 뚜렷하게 가라앉았다.
복원위의 석보리(釋菩提) 스님은 "10여년전 독립선언기념비 조성 당시 석탑 주변에서 벌어진 중장비 작업 이후 시작된 균열"이라면서 "지대석 침하는 1999년 유리로 석탑 보호각을 설치하면서 문화재관리국이 제시한 설계도를 무시하고 탑신 가까이에 철기둥을 박으면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석탑에 대한 정밀실측조사는 92년 이후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보호각이 설치된 뒤로는 육안관찰이나 정밀 사진촬영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성역화 공사
'3ㆍ1운동 성지'로 조성한다는 서울시 방침에 따라 탑골공원은 3월부터 일반인 출입을 차단한 채 공사 중이다.
중장비를 동원해 공원 내부의 콘크리트 바닥을 대부분 뜯어냈고 석탑 3m 부근까지 굴삭기로 긁어냈다. 보호각 바로 앞에도 시추구멍 3~4개가 남아 있다.
2월28일 성역화사업 기공식을 가진 서울시는 옛 원각사 터인 사적지인 만큼 우선 유적 발굴을 한 뒤 성역화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는 3월20일께 유적 발굴 작업과 거의 동시에 공사반을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관계자는 "성역화 공사만 6개월이 걸릴 정도로 공기가 빠듯하다"며 "시는 광복절 이전에 공사를 마무리짓고 공원을 유료화할 복안"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적지 500m 이내의 현상변경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성역화 공사는 아직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박물관이 주도하는 원각사지 발굴작업은 이달 중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복원위는 "원각사 가람 주춧돌과 연화지 등 귀중한 유물들이 발굴됐지만 서울시측은 '별게 아니다'며 막무가내로 공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 숭례문(남대문)에 이어 대한민국 국보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세조13년(1467년)에 현재 탑골공원 자리인 원각사에 세워졌다.
135매의 대리석재를 접착물 없이 탑신간의 균형을 이용해 쌓아올린 세계 유일의 조탑 형식으로 정교하고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탑신 안에 부처님 진신사리와 구결언해 원각경이 들어 있다.
1994년 10월 탑신부에 부조돼 있던 불상의 얼굴이 떨어져 나가 이미 문화재 보존에 경종을 울렸으며, 산성비와 비둘기 등에 의한 훼손이 심해져 99년부터 유리 보호각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주변에 보물3호인 원각사비와 서울시 유형문화재 73호인 팔각정이 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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